(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직장 사람들에게 부쩍 '화'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확진된 직원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 일을 누군가가 대신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일까요. 본인의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본인의 업무조차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직업적 특성상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룰렛판에서 재수가 없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의 일까지 얹히니 불만이 쌓일 만도 합니다.
일찌감치 2월 말에 확진이 되었던 저는 3월 초까지 격리기간을 보낸 이후 빠지는 날 없이 꾸준히 출근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비고 채워지는 자리들과 오고 가는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일렁이는 모양새와 방향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보입니다.
1. 힘듦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업무 강도가 높아진 것을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주변 사람의 업무 또한 많아졌음도 받아들입니다. 상대도 나도 모두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합니다. 키보드 위에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힘들어도 상대방 또한 그런 걸 알기에 자기가 한 걸음 더 걸으려 합니다. 상대 또한 그 마음을 알아서 감사를 표합니다.
위기 속에서 마음을 통한 사람들이 마주 보며 눈을 찡긋하는 것처럼, 힘든 와중에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는 직장이 괴로운 곳이 되면 안 된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2 자신의 힘듦을 끊임없이 토로만 하는 사람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업무가 많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경우가 많은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올해 이곳으로 전보해 온 탓에 남들이 피하는 일을 재수 없게 맡았다는 등의 푸념을 끊임없이 합니다. 불합리하다고 말하면서도 개선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지운 짐에 깔려 몸까지 병이 듭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한껏 세우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자신을 공격하는 자와 아닌 자로 구별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들에겐 전자로 분류되고, 업무로 협의를 해야 하는때 감정을 앞세웁니다. 이런 사람이 부서장일 경우에는 문제가 커집니다. 부원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고 또 다른 고슴도치로 탄생합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다행히 제 주변에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가까이 있으면서 고충을 나누고 많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직장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감정을 과하게 싣는 순간 업무 효율도 떨어지고 불행의 길로 접어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서와 협의해야 하는 일이 많다보니 요 근래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여느 때와 달라졌습니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경보음을 끄기 위해 직장이라는 곳이 저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직장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참 좋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질 것 같습니다. 20년 가까이 한 가지 일에 종사하면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많이 배웠습니다. 이 배움이 저만의 노하우를 만들었고 이제는 이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조언까지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가 해야 하는 일의 가이드라인이 보입니다. 이 위치가 직장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위치가 아닐까 합니다.
또, 직장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곳입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을 덜어준 덕분에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직장이 나의 중심에 있지 않고, 오히려 발판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부담 없이 하게 해 줍니다. 참 고마운 곳입니다.
고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직장은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고마운 직장이 원망스러운 곳이 되면 안 됩니다.
약 3시간 뒤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겠네요.
새벽의 성찰이 저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