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감정을 보호하는, 그 '거리두기'
안 맞는 당신과 잠시 떨어질게요
'거리두기'라는 처음 단어를 들었을 때, '사회적'이란 단어와 결합된 모습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공적인 느낌을 주는 '사회적'과 '거리두기'라는 굉장히 감성 어린 느낌의 단어가 나란히 붙어있으니 두 가지를 어떻게 생활에 녹여내야 할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이러스를 매개로 한다는 전제를 까니 수치까지 명확한 지침이 나왔지만 말입니다. 뉴스 자막에 투박한 고딕체로 나오는 '거리두기'가 아직도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제가 너무 감상에 빠졌기 때문일까요.
최근 딸이 같은 반 아이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아이와 멀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상대 아이가 딸의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하면서 갈등이 커졌습니다. 치기 어린 나이의 아이가 벌인 일이었기에 그저 사진만 지워주기를 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전화를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상대 아이의 어머니와, 그리고 저와 번갈아 통화를 하시며 상대 어머니가 사과를 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고 다시는 그럴 일이 없도록 지도를 부탁한다는 의도를 전달하고 통화를 끝내려는데 담임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턱 걸렸습니다.
"어머니. 두 아이가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일이겠지요. 둘이 싸우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감사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냥 '네, 감사합니다'하고 넘어가도 됐을 텐데 굳이 저는 한 마디 덧붙이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아이가 같은 반에 있는 아이와 꼭 사이좋게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둘이 잘 맞지 않다는 게 누가 옳고 그르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서로 성격이 달라서 그런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아이가 더 이상 제 아이에게 기분 나쁜 눈빛을 보내거나 듣는 데서 욕하는 일만 멈추었으면 합니다. 학년이 바뀔 때까지요. 제가 바라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선생님께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은 학부모로서 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혹시나 제 말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어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면 어쩌나 하고 잠시 후회도 했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제 의도를 알아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어머니. 안 맞는 아이가 서로 웃으며 지낼 수는 없지요. 둘이 마음 다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겠습니다."
선생님과의 통화를 마치자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 나를 지키는 것. 나를 나로서 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인 그 '거리두기'말이죠.
'거리두기'로 편안해진 인간관계라 하면 저는 친정엄마와 저와의 사이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감정적이라면 뒤지지 않을 두 모녀가 붙어사는 시간들은 전쟁과 같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서도 쌍둥이 육아가 힘들다는 이유로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면서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최악이라 생각되는 그 지점의 바로 직전에 친정엄마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덩그러니 집에 남겨져 넋이 빠진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집을 정리하던 그때, 바로 그때부터 친정엄마와 저의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자연스럽게 시작되었지만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순간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첫 2년간은 엄마와 데면데면했으나 서서히 관계를 회복해서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냅니다. 최소한의 연락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친정 식구들과 모여 식사를 하며 못 만난 기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꼭 같이, 모든 것을 함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말을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것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소소한 거리두기를 합니다. 쌍둥이들은 배우고 싶은 것이 다르기에 다른 일정을 보내고, 저는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한 날에 굳이 집에 일찍 오지 않고 카페에 들러 시간을 보냅니다. 같이 하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지 않으면서요. 또 미안해하지 않으면서요.
직장에서도 맞지 않는 사람이 당연히 있습니다. '당연히'라는 말을 쓰니 슬쩍 웃음이 나옵니다. 단어를 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떠오르는 그들의 얼굴 때문입니다. 완수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곳이다 보니 갈등이 많이 생깁니다. 밖에서 사적으로 만났으면 잘 지낼 것 같은 사람도 업무로 엮이면 사이가 틀어집니다. 그들과의 거리두기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유턴을 하는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유턴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마주쳐도 괜찮다, 라는 것은 괜찮은 척하는 것뿐이니까요. 피할 수 있으면 피합니다. 피하고 나면 피했다는 사실도 금방 잊고 본연의 나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감정은 다스릴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두기는 나를 보호하는 것이고, 상대방도 보호하는 것입니다. 결의 방향이 다른 사람이 굳이 부딪치며 결이 꺾이는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결이 소중한만큼, 상대방의 결도 소중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인배가 아직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소중하다고까지는 못 느껴도 인정은 합니다. 다르다는 것을요. 그저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상대방이 다름을 인정하라는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올 법한 이 쉬워 보이는 말을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