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기
타인의 미운 모습은 나의 미운 모습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산송장이에요."
"정신이 없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녀의 목소리에 다들 숨을 죽입니다. 연말마다 있는 큰 행사가 주 업무인 그녀의 책상 위에 종이와 펜이 어지러이 날아다닙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시 차를 한 잔 타서 제 자리로 돌아오며 그녀의 책상을 봅니다. 차 맛이 반으로 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책상 위 흩어진 물건들이 '너는 차 마실 시간이 있단 말이지?'라며 저를 질책하는 것 같습니다. 으슬으슬 더 추워져서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며 온기를 찾아봅니다. 그런 제 모습이 속상해서 스스로에게 속삭입니다.
'허기질 만큼 나도 일하고 있잖아. 쫄지마. 바보야.'
스스로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순간 자책이 시작됐습니다. 죄책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전혀 부끄러울 일이 없는데도 그녀 앞에만 가면 작아집니다.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그녀가 두렵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저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너만 바빠? 응?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안 보여? 다들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잖아!'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러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 '하하.. 힘들죠?' 하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줍니다. 연말이 되기 전까지 딱히 업무가 없어 조퇴도 잦고 여유롭게 책까지 읽던 그녀의 모습을 콕 집어서 말해주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아봅니다.
그녀의 주 업무가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 제 양팔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걸 들지도 않았는데 왜 아픈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엔 진통제를 먹어야 할 만큼 팔의 통증은 몸살처럼 번져 갔습니다. 앗, 그러고 보니 이 통증은 육아휴직을 끝내고 갓 복직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합니다. 긴장을 하고 난 뒤에 오는 통증입니다. 통증의 정체를 알고 나니 더 의문이 생깁니다.
나는 왜 그녀 앞에서 긴장을 할까?
나는 왜 그녀에게 화가 날까?
그녀의 모습엔 제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그녀의 성향을 더 빨리 캐치하고 반응했던 이유는 그녀의 모습이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제 모습을 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잘 해낼 거면서 힘들다고 투덜투덜, 스스로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알면서도 스스로가 그 능력을 인정하지 못해서 오는 두려움을 타인의 위로와 인정으로 잊고 싶어서 투덜투덜.. 투덜투덜.
그러는 제 눈치를 보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눈빛에 또 상처를 받곤 했습니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에게 따뜻한 말과 위로를 주지 않는 거야!'
라고, 말하지 못하고 또 투덜투덜.
대놓고 말하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미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었으면서.)
그녀의 미운 모습이 저의 미운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게 했구나, 말로 글로 온갖 옳은 소리를 쏟아냈지만 정작 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구나.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에서 멈추면 스스로를 자책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지요. 발전이 없습니다. 이 깨달음을 계기로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근 한 달간 진하게 경험하게 해 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더 짧은 기간이었다면 저도 화만 내고 끝냈을 테니까요.
먼저 제 능력을 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겠습니다. 스스로의 잘난 점을 인정하고 당당해질 때, 주변 사람도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