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하는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자책에서 벗어나기

by 하얀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의 파편들이
나를 공격합니다.



양치질을 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커피컵 손잡이를 지긋이 잡다가 흠칫 놀랍니다. 불쑥불쑥 날아오는 파편이 날카롭게 가슴 깊숙이 박힙니다.


'그날, 거기서, 그 사람에게 나는 왜 그랬을까.'


수없이 되뇝니다. 내릴 수 없는 회전목마에 올라탄 것처럼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에 갇힙니다. 보이는 풍경이라곤 그때 그 사람의 얼굴, 숨기고 싶었던 나의 모습뿐입니다.

제발 그만하라고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숨이 목구멍에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합니다.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듭니다.



요 근래 유독 저를 할퀴는 장면 두 가지를 꺼내봅니다.


첫 번째.

얼마 전 갔던 출장.

저보다 직위가 높은 분과 단둘이 자리였습니다. 나도 이제 경력이 적지 않으니까 그만큼 쿨하고 프로답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과 나란히 앉아 있는 자리를 편하게 여겨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을 더 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편할 수가 없는 자리인데 말이죠. 어색했던 말과 공기. 그날의 저를 통째로 삭제하고, 며칠에 걸쳐 머릿속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제 모습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두 번째.

유명한 분이 운영하는 카페에 갔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그 분과 안면을 적이 있어서 사장님이 보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했습니다. 사장님도 저를 기억하시고 먼저 악수를 청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번엔 그분이 먼저 저에게 다가와 자신의 절친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고마운 상황에 너무 당황했습니다.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말도 더듬고 손도 떨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래, 어른스럽지 못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며 꾸짖던 제가 지금도 제 옆에 앉아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그리 무거운 일들이 아닌 것 같네요.

생각을 가시화하면 이런 좋은 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고, 상대방은 오히려 잊었을 것 같은 상황이라는 게 보입니다.


사실은 저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탓할 만큼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제가 지나치게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잣대의 혹독함과 내가 나다움을 잃은 정도가 비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더 자책이 잦았던 것은 자신을 잃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이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한 사람의 몫을 잘 해내고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는 쉬이 상처받지 않습니다.


이 신호를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삶은 스스로에게 주는 신호와 그 패턴을 감지하는 일의 반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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