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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Mar 07. 2020

06. 나의 스타트업 인턴 경험기

스타트업의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가을, 중고 신입으로 취업처를 알아보던 나는 스포카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매장 영업직에 지원을 결심했고 그 해 12월 열두 명의 동기와 함께 스포카의 인턴이 되었다.


2개월 인턴기간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수 있는 포지션이었는데, 당시 스타트업 뽕에 취해있었던 터라 "나는 로켓에 올라탈 거야!"라는 마음으로 설렘을 가득 안고 입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스타트업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인상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주체성, 진취성, 열정, 젊음.. 등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논현동의 쿤스트할레에서 전 직원이 모인 연말 파티를 했었는데 다들 너무 근사해 보였고 선배들이 멋져 보였다. (지금도 멋지십니다 선배님들~!)

연말 파티에 깔렸던 맥주. 이때 스타트업 뽕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입사 후 부딪힌 스타트업의 현실

화려했던 연말 파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인턴 업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로 스타트업의 현실에 부딪혔다.


정규직 전환은 보장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인턴', '정규직 보장 없음.'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불안정성이다. 내가 지원했던 포지션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인턴 전형이었지만 전환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2개월의 인턴기간이 끝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일정 횟수의 계약을 성사시켜야 했었다. 지원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입사 후 영업을 시작하고 보니 이 조건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새삼 체감했다. 인턴 기간 초반에 하루하루 '계약을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조건부 전환이 스마트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입을 뽑는 데 있어서는 그 사람의 업무역량을 자기소개와 몇 차례의 면접만으로는 100% 파악할 수 없기에, 2-3개월의 수습기간을 주고 업무역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 후에 고용을 결정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특히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스타트업은 영업과 잘 안 맞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뽑았다가 매출은 늘지 않는데 고정비용인 월급은 계속 나가고, 그렇다고 종업원을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기에 채용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맞다.

.. 근데 이건 기업 입장이고, 한 명의 프롤레타리아였던 나로서는 불안정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최소한의 교육은 하되, 나머지는 현장에 나가서 부딪히며 익힙시다.

신입사원이 첫 회사에 가장 기대하는 점은 뭘까. 아마 회사를 통한 '본인의 성장'이 아닐까 싶다. 성장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업무를 통한 배움이 있는가 하면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트레이닝을 통한 배움이 있다.

첫 회사였던 방송사는 대기업이었고 1개월 간의 신입사원 합숙 연수 후 약 2개월 간의 OJT (On the job training)가 있었다. 그동안 메일을 쓰는 법, 명함 주고받는 법, 인사하는 법 등 기본적인 업무 매너를 포함하여 직무에 꼭 필요한 고객 응대 매너 등을 배웠었다.

그러나 두 번째 회사는 직원들에게 합숙 연수를 시키고 수개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할 만한 자본과 여유가 없는 스타트업이었다. 입사 이후 사무실 내에서 받은 교육은 3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날 회사 소개, 대표님들의 소개, 조직 소개를 포함한 오리엔테이션 이후 회사 컴퓨터에 업무 툴을 세팅했고, 나머지 이틀은 솔루션과 피칭 포인트에 대해 배우고 롤플레잉 등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4일 차부터는 선배들을 따라 바로 현장으로 나가서 영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1-2주 후부터는 선배의 동행 없이 스스로 영업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입사한 지 2-3주 만에 어떻게 혼자서 영업을 하고 다녔나 모르겠다. 정말 패기가 넘치던 때였을지도..

인턴 시절 선배님이 진행한 영업 롤플레잉 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정성을 안고, 노하우를 답습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하며 배우는 것이 많았던 인턴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후 스타트업에 남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영업은 해볼 만한 것이었다.

2개월 동안 계약을 따내려고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동기 한 명과 함께 이태원에 자주 갔었는데, 첫 계약을 따낼 때까지 같은 지역을 공략해보자고 했던 것이 며칠 째 이태원을 벗어나지 못해 '개미지옥 탈출'을 모토로 걸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경리단길 근처에 위치한 Fish&Chips 가게에서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때의 쾌감이란.. 생전 영업을 해본 적이 없던 초짜로 길거리에 나가 매장 방문 영업을 하며 며칠 동안 소득 없는 날들을 보냈었는데, 사장님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게 되는구나?'라며 스스로 신기해했었다. 성공경험은 또 다른 성공을 낳는다고 했던가. 그 후 조금씩 영업에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남은 인턴 기간 동안 이태원에서는 써스티몽크, VATOS 등의 매장 영업을 진행했으며 이태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계약을 따냈고, 우수한 실적으로 소정의 상금을 받으며 인턴 기간을 수료했다.

첫 계약을 따냈던 이태원
좋은 성과로 소소한 상금을 받았던 인턴 수료식. 대표님도 나도 파릇했구나 ㅎㅎ

사람이 답이다.

10여 년 전 두산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광고 캠페인을 했었다. 수년 후 구조조정 이슈로 수많은 패러디 글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슬로건 자체는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광고를 보며 '사람이 미래다'라는 문구에 가슴 한편 묵직함을 느꼈다.

나는 이 문구를 조금 변경하여 '사람이 답이다'라고 하고 싶다. 스타트업 특성상 직원 중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또래였던 터라 회사가 대학교 동아리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었다. 혹자는 이를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라고 볼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맞는 동료들이랑 일하는 경험이 너무 좋았고, 이는 애사심을 갖게 된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인턴기간 두 달 동안 전사 워크숍, 각종 생일파티, 퇴근 후 동료들과의 맥주 한 잔 등 좋은 추억이 정말 많다. 동기들과는 때론 방문 영업을 같이 나가며 서로를 지지했었고, 업무 시간이 끝나면 삼삼오오 맥주집에 모여서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고 공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끈끈함이 있었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털어버리고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워크샵, 생일파티, 동기 모임 등 참 이벤트가 많았다.

이렇게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2개월을 보내고 2015년 3월, 스포카의 정규직이 되었다.


브런치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나날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스타트업에 대한 나름의 환상이 있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얼마 안 돼 필자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소가 있는지 물어보자. 명분이 충분하다면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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