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의 인턴 기간을 수료한 후 2015년 3월, 나는 스포카라는 스타트업의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입사하면 으레 '회사와 함께 성장하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 생활을 조금 하다 보면 회사의 성장이 곧 개인의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거다. 그렇다면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감사히도 내게는 성장의 기회가 많았다. 회사 내에는 아직 정의되지 않은 공백(whitespace)이 많았고 이러한 공백들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실행하다 보니 회사와 함께 나 자신도 발전했다. 레벨 0에서 2 정도는 된 느낌? 오늘은 레벨 0에서 1이 되었던, 2015년 3월부터 8월까지 로컬 세일즈팀에서의 경험에 대해 적고자 한다.
B2C 영업의 하루
내가 영업했던 솔루션인 도도 포인트는 엄밀히 말하면 B2B 솔루션이었지만, 매장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1:1로 세일즈를 했던 영업의 성격이 B2C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B2C 영업은 어떤 일을 할까? 실무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당시 일과를 소개한다.
10:00-12:00 사무 업무
오전에는 전화, 이메일, 서류 처리 등 영업 활동에 필요한 사무 업무를 했다.
12:00-13:00 점심
13:00-18:00 매장 방문 영업
우리는 방문 영업을 돌발 방문, 줄여서 '돌방'이라고 불렀었다. 따로 미팅이 잡혀있는 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을 한 곳 정해놓고 매장 여러 곳에 불쑥 들어가서 영업을 하는 날이 많았다. 고객이 나를 모르는 상황에서 전화를 하여 제품/솔루션을 어필하는 것을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하는데, 이 영업활동은 cold visit이었던 셈이다.
방문 영업을 하며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이메일 및 사내 메신저를 확인하고 업무에 필요한 소통을 했고, 매장 문의를 전화로 받고 트러블슈팅을 했었다.
몸, 머리, 가슴을 써라.
그렇다면 B2C 영업을 하며 내 역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곤충은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 또한 이와 비슷한 세 가지를 잘 활용했다.
1. 몸을 써라.
길거리에서 고객 전화를 받고 있는 모습 / 더 많은 매장을 빠르게 돌기 위해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 영업에서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냐는 면접 질문에 나는 체력이라고 대답하며, 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어필했었다. 왜, 미생에서도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양으로 승부를 봤었다. 동료들이 하루에 매장 10여 곳을 방문할 때 나는 20-30여 곳을 돌았었다. 상권 한 곳을 선정해서 그 주변에 있는 매장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백팩을 메고 다니다가 브로셔를 가방에서 바로 꺼내기 쉽게 크로스백으로 바꿨었다.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더 많은 매장을 빨리 돌기 위해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 하루 평균 25곳, 20일을 영업하면 한 달에 500곳을 방문한 꼴이 된다. 이렇게 몇 개월을 보내다 보니 수천 번의 시행착오(try and error)와 최적화를 거치며 가파른 러닝 커브(learning curve)를 그릴 수 있었다.
2. 머리를 굴려라.
단순히 몸만 쓴 것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영업활동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가맹점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강남역 주변의 가맹점 정보를 알면 근처 매장에 들렀을 때 '옆에 ㅇㅇ매장에서도 사용 중'이라며 사례 중심으로 영업을 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개발팀에 가맹점 지도를 만들어달라고 건의했으나,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 당장은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이대로 의견을 접기 아쉬워 스스로 가맹점 지도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고, 구글 내 지도를 이용해 퇴근을 하면 집에서 수백 개씩 주소를 찍어가며 지도를 완성했었다. 당시 가맹점이 2000개 정도였는데 돌이켜보면 참 무식한 방법이었을지도.. 이 지도를 활용해서 주변 유사 매장들의 사례를 들려주니 수주율이 올라갔고, 소문(?)을 듣고 동료들이 지도 공유를 요청했었다. 그 후 효과가 입증되자 개발팀에서 가맹점 지도를 공식적으로 만들어줬었다.
이 외에 머리를 굴렸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서울특별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서울 상권 검색 기능을 이용, 내 권역의 주요 상권들을 빠짐없이 그리고 효율적으로 돌아보려고 했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옐로아이디'(현재 카카오톡 채널)라는 태그를 걸고 홍보하는 업체들을 찾고, 카카오톡에서는 '강남' '논현' 등 지역명을 넣어 옐로아이디를 보유한 업체를 검색하여 연락했었다. (도도 포인트의 장점 중 하나가 옐로아이디와 연동이 되는 것이기에, 이런 포스팅을 남기는 업체는 솔루션에 대한 니즈가 더 있을 것으로 보았다.)
3. 가슴으로 일하라.
주말 근무를 하며 동료와 남겼던 인증샷 어떤 일을 할 때 무엇(what)과 어떻게(how)를 따지기 전에 왜(why)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why는 주체성과 관련이 있었다. 위와 같이 몸을 쓰고 머리를 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스스로가 내 커리어를 만들어간다는 주인의식이 깔려있었다. 꼭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라기보다는, 내 삶과 커리어에 대한 주인의식에 더 가까운데 혹자는 이를 자기 주도성이라 부르는 듯하다.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다 보니 누군가 시켜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 '더 잘할지' 항상 고민했던 것 같다. 계약 수주가 잘 안되던 시기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료와 주말에 날을 잡고 매장 방문을 추가로 했었다. 인바운드에 대해 고민하다가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하고 회사와 본인 홍보를 스스로 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2015년 여름 하루 최대 계약 수를 갱신하고 소속되었던 팀을 1등으로 이끌 수 있었다.
최고의 팀, 최고의 성과
1등 찍고 제주도 간다고 신나 있던 사진.. 영업 1팀 여러분 잘 지내죠? 그렇다면 B2C 영업은 개인만 잘하면 되는 것일까? 이전 포스팅에서 '사람이 답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내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끈끈한 팀워크가 있었다. 내가 속했던 스타트업에서는 개인과 팀을 모두 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었다.
우선 개인에게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었는데, 사업 초장기였던 당시 계약 수주액의 XX%(두 자릿수)가 개인에게 돌아갔다.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곳의 인센티브율이 한 자릿수 또는 소수점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건 하에 '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들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개인 인센티브만 있었다면 팀워크가 와해될 수 있었겠지만, 팀 인센티브가 있었기에 각 팀원들이 서로를 더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었다. 당시 전체 실적이 1등인 팀에게는 제주도 비행기표를 지원해주는 내부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꿀 같은 제주도 휴가를 위해 다른 팀들과 선의의 경쟁을 했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최고의 팀원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약 5개월 간 이렇게 B2C 영업을 하다 보니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B2B팀을 꾸려서 법인 영업을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몸을 쓰고, 머리를 굴리고, 가슴으로 일했던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졌었고, 자연스레 성과를 인정받아 B2B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렇게 serendipity를 통해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