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 간 스타트업 로컬 세일즈 팀에서 B2C 성격의 영업 경험을 쌓고 있던 중, 회사에서 법인 영업을 제대로 공략하고자 B2B팀(당시 '브랜드 팀')을 신설했다. 몸을 쓰며 빠른 시행착오를 거치고, 머리를 굴리며 더 효율적인 영업 방법을 고민하며, 더 잘하기 위해 가슴으로 일하다 보니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생겼고 내게도 좋은 기회가 왔다. 브랜드 팀에 합류 제안을 받은 것이다. 빠르게 부서 이동 인터뷰를 보았고 2015년 여름 네 명으로 구성된 브랜드 팀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2016년 가을까지 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B2B 영업의 하루
B2B 영업은 B2C와 무엇이 다를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적합한 전략을 통해 거래를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 있으나, 기업 대 기업으로 일을 하다 보니 사무 업무의 비중이 늘어났다. 당시 일과는 아래와 같다.
10:00-12:00 사무 업무
B2C 영업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에는 전화, 이메일, 서류 처리 등의 업무에 시간을 쏟았다. 매주 월요일에는 오전에 팀 회의를 했고, 주간 세일즈 계획을 세워 움직였다. 회의 시간에는 영업 파이프라인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전략을 짜고, B2B 영업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논의했다.
12:00-13:00 점심
13:00-15:00 추가 사무업무
이 시간에는 영업 전략을 짜거나 주요 잠재 고객사의 컨택처를 알아보고 전화 또는 메일을 보내고 (cold call or cold mail), 고객사 미팅 준비를 하거나 제안서 및 견적서 작업을 했다.
15:00-16:00 고객사 미팅 장소로 이동
16:00-17:00 고객사 미팅
미팅은 월요일을 빼고 화~금에 하루 1~2개 정도 가졌는데 일주일로 따지면 3회~7회 정도 했다. 고객사에서는 오전 10시, 오후 4시 미팅을 선호했었는데 하루에 미팅이 3개인 날은 보통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4시에 진행했었다.
17:00-18:00 사무실 복귀
18:00~ 고객사 미팅 팔로업 메일 작성, 영업 플랜 검토
가슴으로 일하고, 몸과 머리를 써라.
B2B 영업을 하며 내 역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B2C 영업 관련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가슴으로 일하고, 몸과 머리를 써라. B2B 영업은 수주하기까지의 기간이 길고 여러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고객의 니즈에 맞게 솔루션을 제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머리를 굴려서 짠 전략이 있다면 실행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영업 노하우를 만들어가 보자.
1. 머리를 써라.
매장 고객관리 세미나 호스팅 / 공유FC 팟캐스트 진행 / 프렌차이즈 박람회에서 서비스 노출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했었다. B2B 영업에서 전략의 중요성은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브랜드 팀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장분석을 하고, 주요 잠재 고객사(top prospects)의 목록을 만들고, 이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계획을 세웠다. 잠재 고객사 리스트 중 상위 100여 개에 대해서는 세부 프로필을 짜고 영업 활동 계획을 세워보았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대부분 이전의 영업 이력이나 컨택처가 없었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연락정보를 찾고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은 가장 전통적인 영업방식이지만 동시에 효율이 낮았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내도 스팸으로 오해받기 일쑤였고, 전화 10통을 하면 미팅 한 번이 잡힐까 말까 했다. 예를 들면 '스포카의 ㅇㅇㅇ입니다.'라고 할 때 '스포츠카요?'라고 되묻는 곳도 있었고, 서비스명인 '도도 포인트'를 언급할 때도 고객이 '도덕 포인트', '도둑 포인트' 등으로 엇듣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접근할지도 같이 생각했어야 했다. 인바운드의 성사율이 아웃바운드보다 높았던 만큼, 솔루션을 어떻게 적합한 고객에게 노출시키고 인바운드를 유도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아래 몇 가지 내가 시도했던 방법들을 소개한다.
관련 업계 네트워킹: 브랜드 팀의 주요 고객은 프랜차이즈 업계였고, 관심을 갖고 찾아보던 중 공유 FC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피자알볼로의 방수준 실장님이 만든 이 모임은 프랜차이즈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서로의 노하우와 성공사례 및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스터디를 하는 곳이었다. 격주에 한 번 퇴근 후 피자알볼로 대치점에서 모여 매 번 다른 주제로 스터디를 했는데, 고객사의 생태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싶었던 터라 바로 가입하고 모임에 나갔다. 열성을 갖고 활동하다 보니 많은 분들께 서비스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흑역사) 업계에 도도 포인트, 그리고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각종 프랜차이즈 박람회 방문: 코엑스, SETEC 등 다양한 곳에서 매년 프랜차이즈 박람회를 연다. 이러한 박람회는 가맹점을 늘리고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기업들이 수십 곳 참가하기에, 영업으로써 시장의 동향을 살피고 잠재 고객사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모든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방문했고, 박람회에 부스를 내는 고객사가 있으면 이벤트에 도도 포인트를 적극 이용하라고 부추겨 우리 서비스를 덤으로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세미나 개최: 고객관리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수 차례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단순히 영업을 하고 솔루션에 대한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객이 필요로 하는 마케팅, 고객관리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몇 차례 세미나를 통해 우리 팀이 고객관리와 마케팅 방면의 전문가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고, 세미나를 통해 연이 닿은 고객과 수주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성공사례 홍보: 사례가 지니는 힘은 크다. 특히 우리나라 고객은 무리 중 처음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이 되기를 꺼려한다.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리라. 그래서 영업 미팅을 나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우리랑 비슷한 다른 곳은 어디가 사용하고 있나요?'다. 로컬 매장 영업을 할 때에도 '바로 옆에 ㅇㅇ매장에서도 사용하고 있다'라는 포인트가 잘 먹혔기에, B2B 영업을 할 때에도 각각의 세부 업종에서 눈에 띄는 성공사례를 만들고 홍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원앤원 주식회사의 사례로 놀부를 설득했고, 이랜드 SPA몰로 원더브라, 롤링핀 사례로 미스터 도넛을 수주했다.
SNS 활용: 자체 플러스친구 및 블로그를 개설하고 회사, 서비스 및 성공사례를 SNS 채널에 올려 인바운드를 유도했다.
2. 생각한 것은 실행으로 옮기자.
B2B 영업에서 1번, 머리를 써서 전략을 짰다면 절반은 해낸 거다. 이제 각각의 전략 중 효율과 파급력을 따져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실행해나가면 된다. 깊이 생각하고 타당성을 검토한 후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으나, 나는 무엇이라도 빠르게 실행해보고 빠르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을 최적화해간 케이스다.
아웃바운드 영업 활동에도 예외는 없었다. 미팅이 없는 날엔 하루에 20여 건의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을 돌렸다. 단순히 메시지를 복사 붙이기 한 것이 아니라 고객사마다 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냈고 제목 및 내용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어떤 제목이 클릭률이 가장 높은지, 어떤 내용이 조금 더 높은 응답률을 보이는지 실험해가며 최적의 메시지를 다듬어갔다. 콜드 콜을 할 때에도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하며 대강의 스크립트를 써서 진행했다. 이렇게 컨택을 하루에도 수십 건 하다 보니 어떻게 컨택 정보를 찾고 고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더 설득력이 있는지 빠르게 터득해갔던 것 같다.
3. 가슴으로 일하자.
이전 포스팅에서도 강조했듯이 위 1-2번은 주체성, 자기 주도성이라는 why가 뒷받침해줄 때 빛을 발한다. 애초에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다면 1번도 2번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내 커리어 성장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하면 지금 하는 업무를 더 잘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식이 있었기에 하루 수십 건의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을 보내며 메시지를 최적화하고, 업계 스터디에 참여해 네트워킹을 하고 박람회를 돌며 시장 동향을 살폈으며, 때로는 회사와 서비스의 홍보 담당자를 자처하여 블로그 등에 성공사례 글을 빼곡히 기재할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 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B2B 영업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들 미생의 명대사,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모든 업무들이 그렇겠지만, 스타트업에서 B2B 영업을 하면서 이를 통감했다. 당시 회사에 B2C 영업 유경험자는 있었으나 B2B 영업을 제대로 해본 사람은 없었다. 누구 하나 법인영업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기에, 우리 팀은 백지를 펴놓고 머리를 맞대어 그림을 그려가는 작업을 참 많이도 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시장의 특성은 무엇이고 어떤 고객부터 타깃으로 삼아야 하는지, 법인영업의 총체적인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고 이 안에서 우리는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콜드 콜과 콜드 메일을 보낼 때 어떤 케이스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각 영업 간 영역(sales territory)은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영업 활동 관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법일지 고민하고 실험해가며 최적화시켜 나갔다.
팀에 합류했을 때 처음에는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이런 과정을 거쳐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성공 및 실패 경험을 공유하며 우리는 포괄적인 집단지성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초짜배기 법인 영업 담당으로서 혼자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손발이 척척 맞았던 우리 스포칸들 @오키나와 여행 이렇게 15개월 간 B2B 영업을 하며 미스터피자, 미스터도넛, 이랜드리테일, 원더브라, 원앤원 주식회사, 놀부 등 다양한 고객과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입사 당시 1700여 개였던 가맹점 수는 어느덧 2년여 만에 10,000개 이상으로 늘어있었다. 2년 동안 몸, 머리, 가슴으로 합이 맞는 동료들과 일하다 보니 매장 수가 늘어난 것 이상으로 나 또한 성장해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10월, 다음 커리어에 도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