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부터 2016년 가을까지 약 2년 간 스타트업에서 영업을 하며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 합이 맞는 동료들과 B2C와 B2B 성격의 영업을 모두 경험해보며, 가맹점 수가 5배 이상 늘어날 때 나의 경험치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회사에서의 경력이 만 3년으로 접어들 때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의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완만해지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옅어진 요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직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이직을 해야 할지 숙고하며 남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렇다면 언제 남아야 하고 언제 떠나야 할까?
남아야 할 때
단순한 매너리즘: 369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한경 경제용어사전의 정의를 빌리자면 이는 반복되는 생활과 업무, 똑같은 대인관계 등으로 3개월 단위로 이직이나 전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현상이다. 비단 개월뿐만 아니라 연 단위에도 적용되어 3,6,9년 차가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이직을 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머리를 내민다고 한다. 2003년의 한 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8% 이상이 369 증후군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증후군이 반복되는 생활과 업무 패턴에서 오는 단순한 싫증 때문이라면 이직을 말리고 싶다. 대신 업무에서 다르게 시도해볼거리는 없는지 살펴보거나 생활에 활력을 주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타성에 젖은 시기가 지나가 있을 거다.
회피성 이직: 재직 중인 회사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이직하는 것 또한 만류하고 싶다. 문제가 없는 회사는 없고, 각각 다른 형태의 문제들이 존재할 뿐이다.
상사와 합이 안 맞거나 팀원 때문에 힘들어서 이직을 고려하는가? 그럼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떠올리자. 팀/회사 내에 또라이가 싫어서 이를 피하려 다른 곳으로 옮기면, 옮긴 곳에도 그 나름의 또라이가 존재한다. 만약 또라이가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본인이 또라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사람 문제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또라이를 피해서 이직을 알아보기보다는 안 맞는 사람들과 어떻게 원만하게 지낼지 터득해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본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출처: https://ppss.kr/archives/19622)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의 키워드는 '성장'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 이직은 나의 역량을 강화하고 커리어를 성장시키기 위해 해야 한다.
나의 성장 속도가 느려졌을 때: 회사에서 개인의 성장은 다양한 패턴의 러닝 커브(learning curve)로 표현될 수 있다. 러닝 커브란 100여 년 전 한 심리학자에 의해 소개된 개념으로 어떤 대상을 학습하는 데 투입된 시간 대비 학습 성취도를 나타낸다. 곡선의 형태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른데 아래와 같은 패턴이 일반적이다.
스타트업에서 2년간 영업을 하며 위 그래프의 steep acceleration 구간과 같은 가파른 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3년 차에 접어들 때 즈음 내 성장 속도가 느려진 것을 느꼈다. 스타트업에 머물러있으며 같은 일을 계속할 때 내가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감지했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며 B2B 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도 있지만, 배움과 발전에 대한 갈증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더욱 큰 시장을 커버하고 체계적인 영업을 해보고 싶었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새 직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처럼 예전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는 생각이 들거나, 재직 중인 회사에서 인사 적체 등으로 커리어 성장이 어렵거나, 또는 회사의 성장이 둔화되고 산업군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분류되어 앞으로의 길이 잘 안 보인다면 이직을 알아볼 때다.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보일 때: 본인의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나의 역량과 커리어를 퀀텀 점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면 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회 초년생부터 10년 차까지는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쌓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때 전문성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켜주는 기회를 포착하면 도전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직에 대한 고민을 하며 링크드인에서 IT 영업 쪽의 채용 공고를 살펴보던 중 한국오라클의 공고가 눈에 띄었다. 2016년 하반기 신설한 Oracle Direct Prime이라는 부서에서 클라우드 솔루션을 영업하는 포지션이었다. 클라우드 솔루션이 '새로운 것'으로 인식될 때였는데, 신설 부서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영업할 수 있는 기회에 매력을 느꼈다. 스타트업에서처럼 백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하겠지만, 근 40년간 비즈니스를 해 온 기업의 체계와 영업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채용 공고의 지원 버튼을 눌렀고, 몇 차례 면접 끝에 2016년 11월 오라클에 합류했다.
주변에 이직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람, 돈과 같은 이유를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사람과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보고 이동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은 상수가 아닌 변수이기 때문이다. 성장에 포커스를 두어 이직을 하고 커리어를 쌓다 보면 자연스레 연봉이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