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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May 04. 2020

꼭꼭 씹어먹기

곱씹고 되새김질하여 소화시키기

이십 대 초반 손이 큰 친척의 집에서 몇 개월 머무르며 식욕이 증폭되었다. '고모님'이라고 부르던 팔촌 즈음되던 친척분은 이자카야를 취미로 운영하던 건물주였다. 넉넉한 주머니와 마음 덕에 삼시 세끼를 아주 푸짐하게 챙겨주시던 고모. 그렇게 나는 한 끼에 고기 5인분을 기본으로 먹으며 웬만한 남성보다 뛰어난 소화력과 위장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이십 대를 돌이켜보면 뭐든 꼭꼭 씹어 넘기기보다는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바빴다. 뭐든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하려 했고 먹기도 참 많이 먹었다. 이십 대 초반에야 이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고 탈도 안 났지만, 어느새 삼십이 넘고 보니 이십 대 초반에 비해 10킬로가 쪄있더라.


서른둘에 애플리케이션의 힘을 빌려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거기서 mindful eating (마음 챙김 식사)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음식을 후루룩 먹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면 포만감과 만족감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하루 섭취 칼로리를 1300kcal 정도로 제한했는데, 그러다 보니 음식 하나하나를 먹는데 최대한 만족감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예쁜 그릇에 담아보고, 먹기 전에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한 입 한 입 조심스레 입에 넣어 꼭꼭 씹어먹어 보았다. 음식을 입 안에 넣고 몇 번이고 되새김질한 후 넘겼다. 그렇게 먹으려 노력하다 보니 웬걸. 정말 음식을 (평소보다)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들더라. 위장이 찬 느낌도 있었지만 마음의 만족이 컸다.

마음 챙김 식사에 특히 신경 썼던 때의 한 끼

마음 챙김 식사 경험을 통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꼭꼭 씹어먹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빨리빨리 넘겨버리기보다는 곱씹고 되새김질하여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장소를 방문하는 수박 겉핥기 식 패키지 투어는 싫다. 한 도시에 가더라도 하루에 두세 군데 장소에서 그 장소를 충분히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남들은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로 다녀온다는 강릉에 3박 4일 가서 진득이 즐기다 오는 사람이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이에 대해 복기하며 어딘가 기록으로 남겨놓으며 추억을 곱씹는다.


책을 빠르게 한 번 읽고 마는 것은 지양한다. 가장 만족하는 독서를 할 때는 책과 대화를 할 때다. 생각해보고 싶은 문구가 있으면 메모를 해놓고, 이에 대한 생각을 공책에 적으며 읽으면 왠지 뿌듯하다. 마음에 드는 문구는 따로 필사를 하며 되짚어본다. 그 후 독후감을 정리하고 나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한 것 같아 흐뭇하다.


운동을 급하게 하는 것도 싫다. 운동 전 후에 느긋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어줘야 하기에, 실제 운동을 30분 하더라도 앞뒤로 시간을 빼서 1시간 이상 잡아두는 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지난 일들에 대해 반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정리해보려 한다. 내가 곱씹고 되새김질하여 소화시켰던 것들에 대해.

#꼭꼭씹어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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