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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Jul 11. 2022

공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재취업 성공기

두 번째 직장에서 10년 다니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월 8일, 전 직장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7월 1일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기 전까지 나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 같았다. 4월 초까지 회사에 나갔지만, 쓰지 못한 연차가 25개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실제 퇴사일은 5월 중순이었다. 


(행복 편)

처음 한 달은 아직 퇴사처리도 되지 않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월급 받으면서 쉰다는 것이 무척 기분 좋았다.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나를 위한 밥상을 정성껏 차리고, 넷플릭스로 'IS IT CAKE?' 보면서 낄낄대다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난 후엔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서 집 앞 공영자전거를 빌려 탄 후 바람을 느끼며 동네 카페까지 간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쿠키를 시키고 자소설 닷컴을 킨 후, 핸드폰을 들어 인스타-유튜브-넷플릭스 순회를 한다. 오전에 카페에는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그들을 보며 '다들 회사 안 다니나.. 돈 많은 백순가..' 생각하며 돈 많은 백수는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도 해봤다.(그들도 나를 돈 많은 백수로 봤을지도?ㅎ)


(고난 편)

올해 초부터 여러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기 때문에, 사실 퇴사 처리가 되기 전에 이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또 최탈 다음은 최합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3월 말, 최탈 후 예비 1번까지 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재취업에 대한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입사 지원을 했던 회사들에서 자꾸만 서류 탈락을 했다.. 면탈도 필탈도 아닌 서탈을.. 서탈이 10건을 넘어가자 멘탈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 회사의 동료들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후져 보였다. 주위 가족들과 친구들은 조급해할 필요 없다며 이번 기회에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라고 위로했지만, 극도의 안정지향형인 나에게 끝없는 백수생활은 신종 고문과 다름없었다.


(극복 편)

퇴사처리가 된 이후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하루에 한 개씩 자소서를 썼다. 몇 달 전에는 정규직 아니면 입사 지원을 하지 않았지만, 상반기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직도 가리지 않고 넣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계약직으로 지원한 회사는 대부분 서류 합격이 됐고, 그중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공기업 계약직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근무 시작일이 7월 말이라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도 계속 입사지원서를 넣으며 바쁘게 보냈다. 원래 NCS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서류에서 30 배수 이하로 거르는 회사들만 지원을 했었는데, 최대한 시험을 많이 보자는 생각으로 서류에서 거르지 않는 회사들도 지원을 했다. 그러던 중 00시 통합 채용에 지원하여 필기시험을 쳤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필기 전형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후 서류 전형은 이전의 공공기관 근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무난히 통과했고, 면접 전형에 참석하게 되었다. 


(절망 편)

면접 방식은 PT 발표 및 질의응답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PT 면접이었지만, 다행히 사전에 발표 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3년 일한 짬바가 발휘되지 않을까 하며 자신감이 생겼다. PPT 장인 남자 친구도 합세하여 발표자료를 만들었고, 여러 번 연습한 후에 면접에 참석했다. 문제는 그 전날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발표하면서도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발표는 어찌어찌 끝냈는데, 질의응답을 할 때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목소리가 잘 안 나오니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는데, 횡설수설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면접장을 나왔다. 면접이 끝난 직후 마음속으론 이미 면탈을 확신했고, 실제로 바로 다음날 예비 1번 통보를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바뀐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번 회사에서도 예비 1번이었지만,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예비 1번은 그냥 면탈과 다를 바 없었고, 또다시 필기-서류-면접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막막해졌다.


(다시, 행복 편)

발표난 직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다. 그다음 날, 다시 기운을 내서 자소서를 쓰러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열심히 쓰고 있다가 핸드폰을 봤는데,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이 여러 통 와있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00 회사 인사팀이라며 합격자 중 한 명이 서류상 문제가 생겨서 예비 1번인 내가 합격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전화를 걸어 00 회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찰나에 '이제 다 됐다.. 가족들한테 얘기하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가족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모든 직원이 일에 치여 여유가 하나도 없었던 전 직장과 다르게 자율적인 분위기의 현 회사가 낯설지만, 이곳에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들이 봤을 때는 이직할 곳도 정해놓지 않고 퇴사해서 한 달 반 만에 재취업한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는 것을 기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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