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살 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지난 주말,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외할머니댁에 갔다. 불과 한 달 전에 할머니를 모시고 벚꽃구경을 갔다 왔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눈물을 터트리셨다. 엄마한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지독한 건강염려증에 걸려있었다. 아무래도 80세가 넘은 연세이다 보니 특별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여러 기능들이 저하되고 있었는데, 그 변화 하나하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느끼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같이 사는 작은 삼촌을 붙잡고 매일 "얼마 못 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실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에 다니는 이모에게는 끊임없이 본인의 상태를 확인했고, 가까이 사는 우리 엄마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셨다.
할머니의 이런 변화는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꽤 충격적이었다. 80세쯤 되면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매우 심각한 죽음 공포증을 앓고 있다. 인간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안이 있겠지만, 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꽤 어릴 적부터 한번 죽음에 대해 떠올리면 '죽을 때 아플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죽으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걸 누가 기억할까?' 등등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괴로웠다.
내가 어른들께 죽는 게 너무 무섭다고 하면, 어른들은 "뭐가 무서워. 사람이 태어났으면 죽는 게 자연의 섭리일 걸 어떡해? 받아들여야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죽음에 초연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나이가 들면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가 했는데, 이번에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것만큼 아까운 것이 있을까. 죽음과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무미건조하게 살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어떻게 살든 내가 책임지는 내 인생이지만, 지금의 '나'로는 한 번밖에 살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살아보기로 했다.
+ 외출하시면 언제 아팠냐는 듯 해맑게 웃으시는 할머니를 위해 더 자주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