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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Oct 31. 2020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2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1.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출산 문제로 남편과 부딪혔던 시간의 상처도 흐려져 갔다.


그 일이 우리의 관계를 흔들어 놓지는 않았다. 아프고 슬프기는 했지만 부부가 먼저이고 안정된 관계 속에 아이도 있는 것이지 아이 때문에 부부관계를 흔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 그냥 묻어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나에 대한 그의 진실한 마음이, 변함없는 사랑이 아픔을 잊혀지게 한 것이 컸다.


그로부터 일 년 여의 시간이 지난 즈음부터 남편은 문득문득 "우리도 아이 낳을까?",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말이 특별히 반갑지도, 그렇다고 왜 이제서야...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이제야 때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접고 새벽에는 건강음료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 생으로, 낮에는 교육기관에서 교재 개발 연구원이자 강사로, 오후에는 학교 방과 후 수업 교사로, 저녁에는 과외 선생님으로 하루를 꽉 채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기도 심리학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도 하며 조직을 떠나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부딪히며 찾아가던 시간이었다.


#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아빠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엄마가 아파서 응급실에 와 있다고 했다. 병명을 모른 채로 입원한 엄마는 온갖 검사를 다 받은 후에야 간에 문제가 있어 절제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몸을 움직이기 힘드신 상태에서 수술받을 수 있는 체력을 회복하는 대만 해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기차로 친정에 내려가 주말을 포함 며칠씩 엄마 곁을 지키는 날들을 보냈다. 그나마 아이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

그즈음 남편은 간절히 원하던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별히 준비하고 지원한 것은 아니었고 제안을 받아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니던 직장 대표님이 면접 진행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직을 막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을 설득하고 회유하는 것을 넘어 이직하려는 회사에 압력을 행사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을 배려하거나 요구를 맞추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일 잘하는 직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 사람, 더 나아가 한 가정의 미래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휘두르려는 태도에 화가 났다. 내 삶이 나보다 힘 있는 누군가에 의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온몸으로 절감했다. 결국 우리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그 일로 상심이 컸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회사에 발이 묶일 거라는 생각으로 일단 사직서를 내고 상황을 지켜보고자 했다. 나는 남편의 결정을 지지했다.  



가슴 졸이며 지켜본 엄마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고름이 차 위협이 되는 간의 일를 제거하고 잘 회복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며칠 후. 고요한 새벽을 가르는 전화벨이 울렸다.


"제일 빠른 기차로 빨리 내려와야겠다."


엄마가 급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족들을 부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이른 새벽 동생이 전화를 걸어온 거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설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새벽,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직은 안되는데.. 나 아직 아기도 안 낳았는데...... 아직, 아직은.....' 아기를 낳고 엄마가 없으면 너무 서럽고 그립고 슬플 것만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아직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닐 거라는 강한 믿음이 마음을 조금 가라앉게 해 주었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제한적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기다려 엄마를 보러 갔을 때 엄마는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산소호흡기를 달고 온갖 장비에 의지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중이었다. 잠깐만 허락된 면회 시간을 기다려 엄마를 만나는 며칠을 보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수업 일정과 해결해야 할 일들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죽음을 앞둔 불안한 상태의 엄마, 한 치 앞을 모르는 남편의 상황. 쌓여가는 병원비와 멈추어버린 남편의 수입.


불행은 손잡고 온다더니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겹쳐서 일어났다. 그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긍정의 마음으로 잘 이겨내 왔지만 그때는 좀 달랐다.

언제나 지지가 되어주시던 엄마가, 나의 위안이고 든든한 기둥이던 남편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을 기댈 사람이 아무도 없이 나는 내 생에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한낮의 집에서 조용히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다 조금씩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뺨을 타고 조용히 흐르던 눈물은 점점 거센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나는 깔고 있던 방석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으어--- 엉 엉-----엉-------------' 내 안에서 야수의 울음소리와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나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빚진 적 없고 남한테 피해 끼친 일도 없이 정말 애쓰며 살았는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도 이렇게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소위 있다는 사람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나의 벌거벗은 현실이. 그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사무치게 억울하고 서러웠다.


남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여간해서 힘들다고 울지 않는 나였다. 그날 나는 누구도,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혼자 마음껏 울음을 토해내었다.


그렇게 얼마간 엎드려 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울음이 잦아들 무렵,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라도 중심을 잡아야 했다. 흔들리는 남편에게도 불안한 아빠와 동생에게도 내가 필요했으니까.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 뱃속에서 생명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 회에 계속....


경험의 지혜

살다 보면 꺾이는 순간들이 있다. 내 의도와 상관없는 세상의 휘몰아침에 의해, 또는 힘 있는 자들의 의도된 권력에 의해.

그 시간들을 견디고 지나며 깨달았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결국은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리질 수 있다는 것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길은 다 있다는 것을, 부부가 서로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면, 그렇게 함께 나아간다면 어떤 문제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삶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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