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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Nov 06. 2020

너와 나의 은밀한 시간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3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1. 왜 아이를 안 낳는지는 어머님 아들에게 물어보시라구요!!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2.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중환자실에서 며칠이나 보냈을까?

엄마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엄마가 떠난 지금 돌이켜 보건대 그때는 정말 나와 아이들을 위해 견뎌주셨다는 믿음이 더욱 강렬해진다.


일반실로 돌아온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털어놓았다. 코를 찌르던 알코올 냄새며 거친 간호사들의 손길. 보호자들의 시선이 없는 틈에 외면당한 자신의 무언의 호소들에 대해. 그 밖에 따뜻한 돌봄에 대해서도 나누어주셨다.

아무 의식 없이 지내는 듯 보였던 시간 동안 엄마는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견디며 삶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가 그렇게 다시 돌아와 준 것이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고마웠다. 병원을 언제 나갈 수 있을지, 수술비와 중환자실에 머물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산적한 일들이 많았지만 엄마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한고비씩 함께 또 이겨내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즈음 남편은 무직 상태의 나날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직하려던 회사에서는 신랑의 전 회사와 업계의 눈치를 보며 채용 진행을 멈춘 상태였고 다니던 회사에는 사표를 내고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전 직장의 대표님은 내가 못 먹으니 너도 갖지 말라는 식으로 이직하려던 회사의 목을 죄였고 신랑은 그렇게 오도 가도 못 하고 붕 뜬 채로 지냈다. 그 힘든 시간에 나도 엄마의 일로 정신이 없었으니 혼자 묵묵히 견뎌낸 마음들도 많았을 터였다.



엄마의 일이 좀 진정되어 갈 무렵 신랑이 고민 끝에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 히말라야에 다녀올까 해."


히말라야 등정은 남편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언젠간 가야지, 언제나 갈까? 하고 정보를 모으며 꿈에 그리던 곳. 이 방황의 시간을 활용해 그곳에 다녀오고자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바쁘게 지내다 보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 않겠냐며. 그 꿈을 위해 조금씩 모아 온 용돈을 털어 다녀오겠다고 했다.


미안함과 주저함의 기색을 내비치는 남편에게 나는 흔쾌히 그러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막연히 어떻게 되기를 기다리고 불안에 떨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 하며 마음도 추스르고 오기를 바랐다.


남편의 등반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정신없이 보내던 날들 속에 문득 달거리를 할 때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나는 혼자 조용히 약국을 찾았다. 그러고는 남편의 눈을 피해 테스트기로 내 예감의 진실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테스트기는 선명한 두 줄을 드러내며 내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순간 엄마의 병상을 지키며 좁은 간이침대에서 지내던 날들이 스쳐 지났다.

그날들 동안 네가 나와 함께 있었구나.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난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엄마를 잘 돌보지도, 그렇다고 아이를 잘 챙기지도 못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보냈을 날들.... 한고비를 넘고 지금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테스터로 임신을 확인했지만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면 남편이 히말라야행을 주저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직장도 그만두고 앞으로의 거취도 불안한 상황에서 임신한 부인을 두고 떠나지는 못할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애써 용기 내어 한 발 한 발 준비해 가는 남편의 발목을 잡고 싶지도 또 부담을 안기고 싶지도 않았다.

잘 다녀와서 훌훌 털고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부터 아이와 나의 은밀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임신 소식을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고 첫 진료도 같이 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병원도 가지 않고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아이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쌓아갔다.


남편은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계획한 대로 히말라야로 떠났다.

그즈음 TV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집에 TV도 없거니와 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는 나였지만 남편을 그리며 인터넷을 통해 그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 보았다.

지금 남편도 저기 어디쯤 있겠지.. 하면서.


드라마를 보며 뱃속의 아이에게도 아빠가 지금 저곳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돌아오면 네가 우리 곁에 왔다는 것을 알려주겠노라, 그렇게 약속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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