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4
계획했던 히말라야 등정을 마치고 남편은 무사히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이직에 대한 문제는 안갯속에 있었다. 퇴사하려는 회사는 사표 수리도 해주지 않고 이직하려는 회사에는 남편을 입사시키지 못하도록 옥죄고 있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걱정과 기다림으로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고 있던 버킷 리스트를 이루며 보낸 것으로 조금은 불암감을 덜어낸 듯 보였다.
이전보다 안정된 듯 보이는 남편의 상태를 살피며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있잖아..."
차분한 말투에 남편은 무슨 일인가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혼자 고이 간직하고 있던 테스트기를 남편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나.. 임신했어."
남편의 얼굴에 걱정과 반가움이 동시에 스쳤다.
"사실 여보가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에 알았는데, 이야기하면 안 간다고 그럴까 봐 기다렸어. 무사히 잘 다녀와줘서 고마워. 병원은 여보랑 같이 가려고 아직 안 가봤어."
남편은 미안함과 감동스러운 마음을 담아 나를 꼭 안아주었다.
직장도 없이 붕 뜬 상태에서 임신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적지않이 부담될 거라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남편은 내 마음을 챙기며 잘 받아들였다.
더불어 히말라야에서 문득 들었다는 생각을 나누어 주었다. 히말라야의 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이곳에 함께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그에게도 아이의 기운이 전해진 듯했다.
나는 가려고 마음먹고 있던 출산 병원에 대해 남편에게 설명했다.
내가 선택한 병원은 관장, 회음부 절개, 진통제 등의 의료 개입을 최소화하고 산모의 주도에 따라 편안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연출산 병원이었다. 이전에 부모교육 준비 과정에서 출산, 육아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다 한 다큐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는데, 그 다큐를 보면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낳으면 좋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당시에는 다른 지역에 살아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막상 아이를 임신하고 찾아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딱 임신을 한때에 원하는 병원을 가까이서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문제는 비싼 병원비였다. 자연출산은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출산 형태이다 보니 일반 병원에 비해 5~6배나 비싼 출산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는 상황이었어도 고민이 될 비용이었는데 남편의 실직까지 겹쳐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바라고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일단 가보자 싶어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내가 첫째를 임신한 무렵은 막 자연출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던 때라 병원은 산모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제각각의 임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산모들이 설렘을 가득 안고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산모인지 알 길이 없는 초기 임신부의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약시간을 넘겨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의 차례가 왔다.
편안하게 보이는 긴 의자에 몸을 누이고 기다리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띤 선생님은 배를 잘 볼 수 있도록 옷을 조절하고 초음파 검사에 필요한 젤을 바르기 전 차가울 거라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남편과 나는 긴장과 설렘으로 초음파를 통해 비치는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선생님이 움직이는 손의 위치에 따라 내 뱃속의 모습이 영상에 비쳤다.
배 위를 유영하듯 무언가를 찾던 선생님의 손이 한 곳을 향해 자리를 잡았다. 이내 사람의 모양을 한 조그만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가기 잘 자리 잡고 있네요. 여기 얼굴이고요, 손, 발.."
첫 검사치고는 꽤 시간이 지나서 온 터라 아이는 어느 정도 자라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손과 발이 다 나있는 모습이 그저 신기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아이의 크기를 가늠해 보니 아직 정말 작은 생명체였다. 머리로 있다고만 여기고 몸으로 느끼기는 했지만 실체를 보지는 못했던 아이의 존재를 우리는 처음 눈으로 만나고 있었다.
뱃속에서 꼬무닥꼬무닥 살아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신기하게 어떤 기운이 차올랐다.
앞으로 남편의 일이 어떻게 될지,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며 자연출산을 할 수 있을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대한 고민들이 순간 다 사라지는 듯했다.
내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아이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아이가 나에게 의지와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생명이 주는 에너지! 나는 그것을 느꼈다.
초음파실을 나와 나는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뒤따라 나오던 남편은 놀람과 흥분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말을 꺼냈다.
"와~ 저렇게 손발이 다 있을 줄은 몰랐네. 진짜 신기하다."
"그지? 나도 이만큼 컸을 줄은 몰랐는데, 근데 아이 보고 나니 왠지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어, 나도!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했는데 보고 있으니 막 힘이 솟는 것 같더라고."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부담과 고민에 휩싸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에 반갑고 감사했다.
우리는 앞으로의 고민을 접어두고 아이를 만난 설렘과 흥분에 젖어들었다. 다 잘할 수 있고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앞으로 거쳐야 할 고비를 미처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우리는 기쁨의 밤을 보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경험의 지혜
개인적으로 출산은 자연출산 밖에 경험이 없다. 그러나 일반 산부인과를 가본 경험으로 비교하자면 확실히 자연출산 병원은 산모에 대한 심리적 배려도 월등히 낫고 환경도 편안하게 조성되어 있다.
출산의 경우 일반 방 같은 곳에서 진행하며 산모가 출산하기 편안한 자세로 아이를 낳기 때문에 고정된 병원 침대에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리라 생각된다.
자연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이 병원 출산보다 훨씬 오래된 출산이며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인식으로 떨쳐내었다.
아이 및 산모에게 미치는 자연출산의 이점은 그 밖에도 많은데 이야기를 진행해가며 차차 나누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