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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Jan 31. 2024

끊임없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의 첫 명상 수행기 - 열흘간의 위빳사나 명상


열흘간 진행되는 위빳사나 명상 코스 기간 동안에는 

고귀한 침묵 규율이 적용됩니다. 


침묵이 해제되는 마지막 날 전까지는 

철저히 이 규율을 지키며 지냅니다. 



핸드폰, 노트북과 같이 

외부와 소통 가능한 수단은 모두 반납하고 

명상 이외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책이나 필기구 등도 소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안에만 집중해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그 어떤 것으로부터의 관여도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나에 대한 알아차림과 평정심을 키워가는 시간입니다.





첫째 날 아침

새벽 4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면장으로 향했습니다.


명상할 채비를 마치고 적막이 감도는 명상홀로 들어섰습니다.

새벽 첫 명상은 4시 30분부터 시작되는데 

시간에 맞춰 들어갔음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습니다.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귀한 침묵 속에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는 에너지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정해진 방석에 자리를 잡고 숄을 두르고 앉았습니다.  


그곳에 명상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도, 말을 시키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들고 나는 호흡에만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호흡에 집중하려 할 때마다 

끊임없이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들려왔습니다.


그 이야기꾼은 바로 '나'였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명상을 방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린 글을 사람들이 읽었을까?

글을 '멈춘다'라는 것이 아니라 '쉬어간다'라고 제목을 지었어야 좋았을 것을....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 인사를 못 남기고 왔네.

하긴 오는 길에 전화했으니

꼭 핸드폰을 반납하기 전에 또 인사를 해야만 한 건 아니지.   


아이들은 잘 있을까?

여기서 있었던 일들, 첫날 방 비교한 이야기, 난방 밸브 찾던 이야기

이렇게 글로 써봐야지.


아차차 지금은 명상을 해야 할 시간인데.

지금에 집중하려고 와서 계속 과거와 미래 생각만 하고 있잖아!


자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

호흡에 신경을 모아서 흐~읍.


아... 다리가 저리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종류를 가리지도 않고

수시로 찾아왔습니다.


조용히 내 안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옛 생각들까지 

어쩜 그렇게 떠오르던지요.


잊고 있었던 연예인들 과거사는 왜 또 그렇게 생각이 나던지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 중에는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제 마음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지금에 집중하기 위해

오롯이 나에게만 몰입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왔음에도


지금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 자리에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금과 상관없는 것들에 쏟아붓고 있는지요.


설거지를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 다 하고 나면 빨래 개고, 다 하고 다면 아이들 숙제 챙기고...'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다음을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왜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지? 

똑 부러지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라거나

'아.. 그 주식을 샀어야 했는데'라는 식으로 

과거에 머무르는 때도 많지요.


'그 사람이 내가 한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하지?

아까 그 엄마는 나에게 왜 그렇게 대한 걸까? 나를 무시하나?'

하고 사실이 아닌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는 때도 많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제멋대로 넘나드는 생각들

사실이 아닌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마음이 머무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생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내 마음이 지금에 있지 않고 

딴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수없이 지금으로 돌아오기 위한 수련을 했습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중 

아주 찰나의 순간에만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는 조금씩 늘어나

꽤 긴 시간 온전히 지금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명상 코스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가장 마음을 쓰고 있는 것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마음이 머무르도록 하는 일입니다.



생각이 자꾸 다른 곳으로 흐려 할 때마다

알아차리고 지금 이 순간으로 마음을 데려옵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면 

그 생각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시 가라앉힙니다.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생각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지금이 아닌 다른 곳에 생각이 떠돌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으로 돌아오는 일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현재에 충실히 머무르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 믿지는 말라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지으신 비욘 나티코는 책에서 

살면서 이것보다 도움이 되는 문장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정말 유용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요즘입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려놓고

과거와 미래에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에

지금에 온전히 머무르며

조금은 더 평안해진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소리들을 내려놓고

평안해지시기를.


여러분의 오늘이

평안하기를

조화롭기를

행복하기를!



덧 1) 위빳사나는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는 하지만 전혀 종교적이 지 않고 자연의 법칙에 근거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이후 글에서 또 이야기 나누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덧 2) 위빳사나 수련기는 수련하면서 경험하고 깨닫고 배운 것들을 기록하는 이야기입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일상에서 깨달음과 와전히 일치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깨달음을 실행하기 위해 매일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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