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봄비가 내렸다. 매섭던 추위가 기억나 온몸을 꽁꽁 싸매고 창문을 열었는데, 미지근한 봄기운이 훅 들어온다. 자세히 바라보니 초록 새싹이 봄을 터트리며 기분 좋게 인사한다. 그렇게 기다렸던 봄을 마주했다.
창문 앞 작은 의자. 햇빛, 비, 꽃망울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이 공간이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로 둘러싸인 바깥의 공간과, 잠옷 차림으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지극히 편안한 상태의 진짜 내가 마주하는 이 곳. 잠시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심즈 게임 속 바둑판같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은 자유롭고 완벽하다.
누구나 어떤 공간은 일상 속 나만의 치유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때로는 그곳이 어느 공원의 벤치가 될 수도, 동네 카페의 벽 쪽 구석 테이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곳이 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꾸미거나 공간을 바꿔가며 나에게 가장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물론 집의 조건은 단순히 공간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일하는 곳과의 거리, 교통, 그리고 학군, 상가 건물이 밀집해 있는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등 총체적인 면들이 고려된다. 그럼에도 멀찍이 바라보지 않고,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 타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이 나를 있게 하고 나의 성격과 나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비밀의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의 심리학>의 저자 바바라 페어팔은 “집은 나의 또 다른 인격이다”라고 한 동시에 인간이 집에 바라는 기대나 요구인 주거 욕구를 여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었다. 안전 욕구, 휴식 욕구, 공동체 욕구, 자기표현 욕구, 환경 구성에 대한 욕구, 심미적 욕구가 그것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많은 사람은 커튼을 매일 치고 있는 것이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또, 홈 가드닝을 하거나, 인테리어를 자주 바꿔가며 자기표현의 욕구를 맘껏 펼칠 수도 있다. 마음의 안식처인 주거 욕구를 자신에게 딱 맞게 충족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가지고 편안히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편안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나 자신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내가 어떤 색을 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내가 어떤 사물을 볼 때 기분이 좋은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휘발성이 강한 이슈와 메시지들이 난무하는 매일의 삶 속에 나의 취향에 대한 고찰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조금만 시간을 내어본다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고찰 후 할 일은, 공간을 나만의 취향에 맞게 꾸미는 일이다. 얼마 전 만난 내 친구 Y양은 베란다에 서재를 만들었다고 했다. 할머니와 같이 방을 써왔는데, 문득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책상을 놓고, 좋아하는 책을 가져다 놓고 취향에 맞게 꾸미니 나만의 안식처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유를 갖는다고 했다. 나만의 취향이 묻어나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그곳 덕분에 Y양은 조금 더 행복해졌다. 문득,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줄 작은 변화들을 상상해보며 나도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나에게 맞는 집 찾기’를 소재로 최근 방영을 시작한 MBC <구해줘, 홈즈>는 집에 관한 타인의 취향에 대해 직설적이기보다는 은밀하고, 세심하게 접근한다. 연일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화제성을 보여주는 것은 개인자산에 맞는 좋은 부동산을 찾는 것에 대한 국민적 관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관심의 이면에는, 여러 집을 보여주고 이를 의뢰인이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타인의 취향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내가 <구해줘, 홈즈>를 처음 본 것은 정규편성 전 파일럿 방송 때였는데, 브라질 대사관에서 일하는 카를로스 씨가 3억대의 전셋집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 의뢰인의 요구에 맞는 집을 한 집씩 추천하고 이를 의뢰인이 최종 선택하는데 당시에 카를로스 씨는 깔끔하고 전망이 좋은 집 대신 조금 의외의 선택을 해서 놀라웠다.
카를로스 씨가 집을 선택한 기준은 나와 조금 달랐다. 한국이라는 타지에 살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껴, 정돈되고 치안이 좋은 곳보다, 조금 오래되었어도 사람들이 많고 동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좋아해 이를 기준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취향과 필요는 개인마다 매우 다르다. 그리고 달라서 정말 재밌다.
이처럼 <구해줘, 홈즈>는 어떤 취향을 가진 의뢰인이 등장할까를 기대하면서, 그 취향에 맞는 여러 가지 집들을 TV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곤, 그 집들의 공간 속에 나의 취향들을 한 움큼 꺼내어 맞춰보기도 한다. ‘이곳에는 파란 페인트가 어울리겠다.’라든지, '헤링본 바닥의 집엔 초록 식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어떨까’하며 나만의 취향들을 속속들이 꺼내 나열해 보는 것도 재밌다. 그렇게 하나씩 꺼내다 보면, 내 공간만 보고도 어디선가 진짜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당신은 이런 사람이군요.’하고 나를 놀라게 해 줄 것만 같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어떤 공간과 어떤 희망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어떤 공간을 보며 누군가의 희망을 짐작해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만의 취향을 조금 더 발견할 수 있는 시간. <구해줘, 홈즈>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