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토마시는 여자들과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이혼남이다. 그러던 토마시의 앞에 버려진 어린아이와 같은 테레자가 나타난다. 그녀를 만난 후, 수많은 여자들과의 에로틱한 우정의 관계들은 무너지고 가벼움은 무거워진다. 그녀가 그의 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계는 허물어졌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그녀만이 중요했다(참을 수 없는 가벼움 中)". 그는 가벼움을 참을 수 없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선을 넘은 그녀는 그의 모든 삶의 행동방식과 이유를 바꿨다.
선을 넘는다는 것. 우연히 도서관에서 한 지리학자의 강연에서도 이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국가들의 경계선을 넘었다고 했다. 재미난 것은 그 경계선이 DMZ처럼 삼엄한 곳도 있지만, 굳이 표시하지 않으면 경계 인지도 모르는 선이 많았다고 한다. 바를러 나사우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에 위치한 마을인데, 마을 전체에 국경선이 복잡하고 재미나게 얽혀있다. 집은 하나인데 주소가 두 개여서 이 집에서 태어난 형제는 국적도 다르다고 한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라는 경계로 같은 형제가 평생 애국심을 가질 국가가 달라지다니 정말 재밌다.
선을 넘는 예능이라는 MBC의 <선을 넘는 녀석들>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 새로웠던 느낌을 기억한다. 기존과 비슷한 여행 예능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국경선에 얽힌 갈등 소재와 역사를 예능에서 풀어간다는 점이 달랐다. 1화부터 시작한 멕시코-미국의 국경의 꼼꼼한 설명들과 배경은 인상적이었고, 유익했다. 하지만, 한국사 강의로 유명한 설민석 역사 강사를 필두로 한 외국 국경의 설명은 어딘지 어색함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선을 넘는 녀석들>이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한반도 DMZ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했던 한반도 편의 공이 컸다.
호평 속 종영 이후, 지난 8월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가 알맞은 옷을 입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국경의 선이 아닌, 시간의 선을 넘는다. 착한 예능, 유익한 예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울, 경주 등 다양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라는 선을 넘는다. 역시 설민석 역사 강사를 필두로, 전현무, 김종민, 유병재가 합류해 웃음과 감동을 함께 선보이며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 첫 타자로 서울의 선을 넘어보았다. 김종민 MC의 말처럼 흑백 필름에서 컬러로 바뀌는 역사의 현장을 시간의 선을 넘으면서 함께 지켜보았다. 그중, 충격적이었던 사실 중 하나는 남산에 일본의 신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식민지배의 상징과도 같은 신궁이 남산에 거대하게 존재했었고, 이를 향해 신사 참배를 강요당하고, 내선일체를 내세우는 정신적 식민지의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 남산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몰랐던 사실이었다. 100년이라는 얼마 되지 않은 시대에 살았더라면, 내가 겪었을 수도 있었을 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시간의 선을 넘는 일은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잔혹해 외면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일상 속에는 또 관심 없는 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와 함께여서 넘어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타자의 마음 속이든, 국경이든, 혹은 시간의 경계이든 정해진 약속의 경계를 허문다는 일은 쉽지 않다. 혹은, 무관심 속에 넘을 생각 없이 안전지대 속에 살아갈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가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가 열렸다.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를 보면서도 그랬다. 아름답고 영롱하기만 한 경주의 금관의 현재의 모습으로만 비춰보고 싶었다. 금관의 화려한 외관 속 감춰진 치욕의 역사를 시간의 선을 넘으면서 배웠다.
시간의 선을 넘으면서 새로운 이들도 알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시영 선생과 6형제다. 현재가치로 약 천억이 넘는 영의정 집안의 재력가 가문. 모른척하고 일제에 적당히 타협한다면, 조상 대대로 누려온 부와 명예를 누릴 수도 있음에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났다. 대가족이 망명길에 오르는 경우는 전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인데, 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바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형제는 모두 죽고 이시영 선생만이 남아 광복의 순간을 함께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라를 팔아넘긴 재력가 이완용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 가장 중요하며 우리가 택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선을 넘으며 느껴지는 가치들을 현재에 고스란히 녹여낸다는 점이다. 단순히 과거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비교해보며 그로부터 우리는 소중함을 배운다. 특히, 지난 방송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이 장소에도 녹여져 있는 점이 새로웠다. 패널들은 익선동의 한 독립 요릿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시적으로 운영된 이 레스토랑에서 그들은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피해 쫓겨 다니며 드셨던 대나무 주먹밥 ‘쫑즈’, 지복영 선생의 간식인 ‘총유병’ 등을 맛보았다. 현재에 만든 과거의 음식을 맛보며,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는 레스토랑의 장면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시간의 선 속에 잠시 머무는 듯이 느껴져 기분이 오묘했다.
"매번 감동이고 애국심을 느끼게 한다", "공부가 아닌 나라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처럼, 매회 시간의 선을 넘나드는 그 감동과 재미를 모두가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듯하다. 엔도르핀이 암과 통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가진 좋은 호르몬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다이돌핀'이라는 신경호르몬은 엔도르핀의 4000배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이돌핀'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바로 감동을 받았을 때였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진리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을 때, 굉장한 감동이 왔을 때 이 물질을 생산돼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켜 몸을 치유해준다. 매주, 시간의 선을 넘나들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몰랐던 사실들과 그 역사로 감동을 받을 때마다 내 몸속에는 다이돌핀이 피어나 온몸을 돌아다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은 긍정적 가치로 내 몸과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선을 넘는 것은 그래서 중독적이다. 그리고 이번 주도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과 선을 넘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