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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Sep 19. 2019

어서와~ 평행세계는 처음이지?

<웰컴2라이프>

“너는 맨~ 이런 것만 보더라?” 며칠 전 방에서 <호텔 델루나>를 보고 있던 나를 향해 엄마가 던진 말이다. 또 귀신이 나오는, 아니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냐는 이야기였다. 가끔 내 방에 들어와 노트북 화면 속 드라마만 슬쩍 보고 갈 뿐인 우리 엄마가 판타지 장르 드라마의 소재 포화에 관해 이야기하다니! 사실 나도 요즘 너무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가 많아 살짝 피로감을 느끼던 차였다.

영화 <검은 사제들> 이후 최근에는 오컬트물이 다수 제작되고 있다.


흔히 한국의 판타지 드라마라고 하면 외국, 특히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 트렌드를 그저 따라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외국 작품의 흥행이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고유한 판타지 드라마의 역사가 있고, 지극히 한국적인 판타지 작품에 대한 시청자의 친밀도도 높다. 무려 1977년에 <전설의 고향>이 처음 방영된 이후, <납량특집 드라마 M>, <환생-NEXT>, <태왕사신기>, <W>까지. 한국의 판타지 드라마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한국 판타지 드라마는 현재 소재 고갈로 인한 위기상태다. 언제부턴가 신선한 소재의 첫 작품이 등장한 뒤, 히트작의 등장을 기점으로 흥행작 및 아류작이 대거 만들어지다 서서히 편수가 줄어드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동은 이제 그만… 평행세계로 빨려 들어간 ‘판타지 드라마’_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2019.08.28.

이렇게 같은 소재의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시청자나 관객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슷비슷한 캐릭터에 매번 다른 주제의식과 매력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웰컴2라이프>는 이제 새로운 게 나올 때가 됐는데, 싶을 때 나온 작품이다. 이제껏 한국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다.

평행세계는 쉽게 말해 이 세상에 거의 모든 것이 비슷한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도플갱어 괴담이 퍼지면서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에서 평행 우주론을 차용한 이야기를 선보여 익숙해졌다.

사실 판타지 소설 <리셋 라이프>, 판타지 소설 작가 반재원의 작품군 등 평행 우주 소재를 가진 소설은 예전부터 한국에도 있었지만, 다른 장르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거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는 웹소설 <유일한 신부>가,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는 <평행도시>가 연재되고 있다. 드라마 중에서는 <웰컴2라이프>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다들 알고 지내는 도플갱어 한 명씩 있는 거잖아요(?)

판타지 드라마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을 실제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1화에서 인물 설명 및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조짐을 보여준다면, 판타지 드라마는 여기에 현실에 없는 세계관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판타지 드라마의 1화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비슷비슷하다. 주인공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개한 뒤, 판타지적인 상황을 부여해 주인공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판타지의 한복판에 떨어진 주인공의 모습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첫 번째이자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인식하기까지 매우 다양한 연구를 시도한다. 전문분야의 인물이든 아니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지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무전기를 발견한 해영(이제훈 분)이 무전기가 정말 과거와 연결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이나, 드라마 <터널>에서 30년 후로 타임슬립하게 된 광호(최진혁 분)가 다시 자신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 터널을 계속 달리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그널> 1화 / <터널> 2화


두 번째는 판타지적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바로 적응, 이해 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의 은탁(김고은 분)이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보고, 귀신들로부터 ‘도깨비 신부’라는 표현을 들어왔기 때문에 도깨비를 만나도 놀라지 않았던 것이나, 드라마 <화유기>의 진선미(오연서 분)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보고, 오공을 기다려 왔기 때문에 요괴들을 만나도 놀라지 않고 적응했던 것이 여기 속한다.

<도깨비> 1화 / <화유기> 1화


세계관이 판타지에 얼마나 포섭되어 있는지나 극의 전체 진행 속도 등을 따져볼 때 <웰컴2라이프>의 이재상은 첫 번째 모습을 보여야 개연성이 있는 캐릭터다. 이재상은 단지 변호사일 뿐 평행 우주론 등의 천체이론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고, 이재상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평행세계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이 드라마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이재상이 또 다른 세계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다른 세계에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다시 돌아가는 시기 및 방법까지 깨닫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시청자에게도, 극 중 세계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평행세계 개념은 주인공 이재상에게만 기본 상식이 되었다. 주인공이 판타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는 동안 현재 상황과 기본 세계관 설정을 자연스럽게 시청자에게 설명할 기회를 <웰컴2라이프>는 날려버렸다.

     


처음인 듯 처음 아닌 처음 같은 평행세계

물론 평행세계는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매우 달라지는 개념이다. 특히 <웰컴2라이프>처럼 영혼만 왔다 갔다 하는 형태라면 더더욱 불필요한 설명은 생략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웰컴2라이프>의 이런 선택은 오히려 평행세계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평행세계가 기존의 다른 판타지적 설정과 특별히 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또 다른 나’의 존재일 것이다. 이전에는 도플갱어에 대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미래의 자신 정도로 상상했다면, 다른 우주에서 온 ‘나’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추가된 것이다. 그래서 평행세계는 ‘다른 세계의 ‘나’를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삶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궁극적으로는 ‘나란 무엇일까’까지 연결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다층적으로 담을 수 있다.


한순간의 선택이 나비효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다른 두 결말로 치닫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들 해보지 않았는가.
“그때 꿈을 포기하지 말 걸 그랬어....”
“부모님 말 안 듣고, 원하는 과에 진학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질풍노도의 시기에 일탈을 왜 했을까.” 그리고...
“.....그때 너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난 행복했을까..”
이 드라마는 어떤 선택을 해도 골치 아픈 결정 장애 시대에, 두 번 생을 살 수 없어 괴로운, 여러분께 대리만족 드라마를 선물하고자 한다.
_<웰컴2라이프> 기획 의도 중


하지만, <웰컴2라이프>의 기획 의도를 보면 ‘나’에 대한 고찰보다는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런 주제는 기존의 여러 영혼 체인지형 판타지 드라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평행세계가 보여줄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두고, 기존 여러 드라마에서 반복되었던 주제를 가져온 <웰컴2라이프>는 익숙할 수는 있으나 그래서 신선하거나 매력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웰컴2라이프>는 평행세계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볼거리 또한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평행세계를 다룬 기존 해외 작품들을 살펴보면, 보통 평행세계는 도플갱어(다른 세계의 나)와 함께 진행된다. 두 세계 사이의 이동, 도플갱어를 만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괴담과 접목시킨 ‘나’와 ‘나’의 대결. 이 두 가지만으로도 평행세계물이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는 다채롭다.

하지만 <웰컴2라이프>는 무려 두 차원 간의 이동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몸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와 현실 상황도 흡사하다 보니 크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치 빙의된 사람을 연기하듯, 한 연기자가 다른 세계의 같은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인데 그마저도 드라마가 절반 이상 진행되는 동안 이재상은 총 2회 세계를 이동했을 뿐이고,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둘 사이의 차별적인 특징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평행세계’라는 소재를 너무 간단히 소개했음에도 “너무 어지럽다.”, “이해가 안 된다.” 등의 부정적 반응이 크지 않은 것은 ‘평행세계’라는 소재가 무색하게 일반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소재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더욱 인간다운 사람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흔했다. 특히 맞추기라도 한 듯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법조인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매력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가령 주인공의 성격이라든지, 변화를 겪게 되는 계기라든지, 인물 간의 관계라든지 하는 여러 부분에서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웰컴2라이프>의 포인트는 평행세계, 가족애, 그리고 변호사와 검사를 오가는 주인공으로 보인다. 자신만 생각하고,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변호도 많이 맡아왔던 변호사 이재상이 가족을 끔찍이 위하고, 피해자를 생각하는 검사 이재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꾸준히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포인트들은 너무 올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강점을 잃어버린 평행세계 소재 외에 어느 것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다양한 주제의식이 필요한 시대다. 새 시대의 새 사람들은 더 이상 이전의 생각들을 무조건 옳다고 하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새로운 생각, 나쁜 경찰과 정의 구현에 대한 새로운 생각, 나이 듦과 치매에 대한 새로운 생각.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생각을 담은 다양한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원래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왜?” 한 스푼만 얹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웰컴2라이프>는 구태의연한 관습만 늘어놓을 뿐이다.


두 가지만 꼽아 보려고 한다. 먼저 이재상이 그렇게 계속해서 과거의 자신의 삶을 후회할 정도로 나쁜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이재상은 물론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호를 하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어떤 나쁜 일을 해왔는지 다른 세계로 가기 전까지의 행적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시온(임지연 분)과 함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 기업 회장 사모(서이숙 분) 때문에 사고를 당해 다른 세계로 왔다. 이전부터 어느 정도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정의 구현을 위해 애쓰는 주인공들은 많았다.

이들은 법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법꾸라지’를 잡기 위해 수사기관은 범법행위를 해도 되는가, 아니면 무능력하다 손가락질 받더라도 본분과 정도를 지키며 수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된 인물들이다. 이런 주인공의 고뇌는 시청자를 감동하게 하고, 주인공의 행동을 응원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재상은 깊은 고민 없이 너무나도 단순하게 피해자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규정하고, 그간의 자신의 행적은 부정한다.

둘째로 시온이 그토록 강조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자.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시온은 재상이 얼마나 가정을 생각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지 어필하고, 이에 재상은 감응한다. 하지만, 보나(이수아 분)가 정말 이재상의 딸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평행세계의 자신은 실제의 자신이 아니다. 원래 세계의 자신이 엄연히 존재하고, 가족 구성원이 다른 것만 보아도 이곳의 자신과 자신의 세계의 자신은 살아온 삶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재상은 너무나도 쉽게 그곳의 자신 또한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보나와 시온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는다. 맞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가깝고 친밀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존재다. 하지만, 가족은 그만큼 어려운 존재다. 때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실제 가족도 그럴진대 하물며 실제 가족도 아닌 사람들에게 재상은 너무 쉽게 감정이입하고 자신의 삶을 바꿔나간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재상은 너무나 일반적인 모습만 보여준다. 정답만이 입력된 캐릭터처럼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않고, 당연히 옳은 일이라 여기며.

진부한 스토리와 캐릭터는 아무리 신선한 소재가 와도 못 살려낸다.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적절한 변주가 필요한 시점에 <웰컴2라이프>는 기존공식을 택했고, 그렇게 차별화에 실패했다.




사실 내 혹평만큼이나 <웰컴2라이프>가 아쉬운 결과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꾸준히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정지훈 배우의 연기력 또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최초보다 최고를 기억한다. 요즘처럼 콘텐츠 산업이 발달한 시기에 ‘최초’의 자리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다. 새로운 생각인 것 같으면 다 누가 먼저 했고, 어디서 나왔던 것이니까. ‘최초’이자 ‘최고’가 될 기회를 놓쳐버린 <웰컴2라이프>가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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