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2라이프>를 보며 드는 생각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패배감을 느낀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 나보다 괜찮은 타인을 보는 것은 잠시 부럽고 말 뿐이다. 일단 세상에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가, ‘저 사람은 집안 자체가 좋잖아’ 혹은 ‘나도 그런 머리 갖고 태어났으면 저렇게 될 수 있었어’와 같이 댈 수 있는 핑곗거리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조건이 똑같은 ‘나’에게 진다면? 현재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월화드라마 <웰컴 2 라이프>는 그런 지점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 좇던 악질 변호사가 사고로 평행세계에 빨려 들어가, 강직한 검사로 개과천선해 펼치는 로맨틱 코미디 수사물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정작 내 관심을 가져간 건 로맨틱도 코미디도 수사도 아니었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 수사 모두 꽤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주인공 이재상이 개과천선을 하는 과정이다. 더 정확하게는 개과천선을 하게 된 ‘계기’가 흥미로웠다. 우선 짧게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웰컴 2 라이프>는 평행세계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답게 두 세상이 등장한다. 첫 번째 세계엔 본인이 잘못된 줄도 모른 채 돈과 성공만 보고 사는 이재상 ‘변호사’가 있고, 두 번째 세상에는 정의감과 사랑, 가족을 중시하는 이재상 ‘검사’가 있다. 이재상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순간까지는 똑같은 삶이었다. 또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경찰대 학생 라시온과 연애를 하게 되는 것도 같았다. 다르게 되는 순간은 이재상의 잘못으로 라시온과 헤어지게 된 이후였다. 변호사가 되는 이재상은 헤어진 뒤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지만, 검사가 되는 이재상은 시온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서, 두 세계는 전혀 다른 형태로 흘러간다.
짧다면 짧은 그 순간의 결정이 삶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다. 처음 이재상 변호사는 자신이 검사가 된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갑자기 유부남에 딸이 생긴 데다, 고급 세단은 온데간데없고 웬 낡은 차가 있으며, 월세 800인 고급 주택 대신 오래된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사로서 살아가는 두 번째 세계에 본인이 더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변호사였던 이재상 역시 진짜로 변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계기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단순히 ‘평행세계’라는 어떠한 판타지 요소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멋져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깨닫는 건 어떤 느낌일까. 또한 똑같은 자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로 산 자신이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이런 의문들을 곱씹어보게끔 만들기 때문에 매력 있게 다가왔다.
인생은 찰나가 쌓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찰나는 전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선택일지라도 분명 어떠한 형태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맡겨,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탓해 본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을 드라마처럼 지켜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 나에게도 이재상처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저 지나친 수많은 친구가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꿔놓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있을 선택은 잘하고 싶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보다 별로라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자존심 상할 테니까.
돌았었죠. 머리가. 지금은 제정신 박혔고요.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놈들 똑같이 피눈물 흘리게 해 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