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은 말할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이 권위를 갖는 이유
아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아픈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동굴에는 들어가 본 사람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비슷한 질환을 가진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사회에서 완전히 다른 일을 하다 온 사람들도 '아픔의 경험' 앞에서는 쉽게 친구가 된다. 아픈 사람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겠지만 실제로 깊은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아픈 사람은 특별한 경험을 한다. 달려가던 삶이 멈춰 서고, 변화하는 몸과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경험. 이런 경험은 아픈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게 경험하지만, 큰 맥락에서는 비슷한 요소들을 공유한다.
아파본 이야기는 아파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대체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또 다른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먼저 경험한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조언해 줄 수 있다. 아픔의 길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당혹감과 어려움을 잘 알기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아픔을 경험하고, 어떤 종류의 아픔을 겪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파본 사람의 조언은 다른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사회에서 '말하기'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아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권위가 된다. 아픈 사람은 사회적 기능을 잃고 도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굳건한 위치를 지켜낸다.
이들의 금쪽같은 조언과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들, 언젠가 아프게 될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