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부부 대화법 2, 생각 바꾸기

서로 모르는 사이 그대로 괜찮아

by 송다감

축복으로 시작한 가정이 파탄 나지 않고 건강하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배우자가 나와는 다른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인정 하기

둘째는 결혼생활이 궁극적으로 나를 성장시킨 다는 기대 갖기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정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아리고 괴롭다. 하지만 '인정과 기대'가 바탕에 깔린다면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무사히 건너 안전한 가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초 남편에게 모든 걸 맞추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었다.


한창 콩깍지가 씌어 사랑했고 신혼이고 아이도 생겼으니 전에 없이 너그럽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남편은 나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게 됐고 자기 편할 데로 행동하고 나의 바람들은 단칼에 내쳐버리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남편의 행동이 석연치 않아 다른 요구를 하려 하면 남편의 반응은 이랬다. '가만있는 사람 건든다. 왜 사람을 바꾸려고 하나,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다.'


사실 그동안 남편의 불편한 언행을 참아왔다. 나는 인격적 인간이니 이해하고 인정하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 참고 참으며 눌러놨다 하는 말이 인자하고 부드러울 리 없었고 불만이 가득해서 손대면 터질 듯한 에너지로 발하됐다. 버티고 버티다 날을 잡아 폭풍우를 만들어내는 나의 태도는 여간 불편하고 비뚤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3,4년쯤 지나 독박 육아 스트레스가 심각해지고 내 마음의 상처가 커져 남편과의 짧은 일상의 대화마저 막막해졌을 때 '이게 아니구나. 맞추며 살려는 노력이 불화의 시작이었구나' 알아차리게 됐다. 극단적 죽음과 이혼과 앞으로의 삶을 총체적으로 뒤섞어 생각하며 내 궁극의 행복한 일상을 위해 결국 남편에게 결투를 예고했다.


"이제부터는 되는대로 싸웁시다. 안 싸우고 살려고 이해하고 맞춰 보려고 하다가 내 마음이 터져서 죽게 생겼어요. 이러다가는 내가 정말 죽어요. 나는 여기서 죽을 것 같은데 당신은 거기서 나를 못마땅하고 답답하게 여기는 게 어이도 없어요. 사실 우리 둘 다 끼리끼리 만난걸 테니 서로 잘나고 못난 것도 없겠다 인정하기로 했어요. 우리 둘 다 불쾌할 때마다 서로 외면하고 회피하면서 불만 쌓아가는 성격이라 이대로는 안 돼요. 끝이 너무 잔혹해요. 삭히지 않고 되는대로 될 때까지 싸워봅시다."


눈물범벅에 이상한 선전 포고였지만 그 후로 불화를 회피하고 싶은 고질적 두려움을 떨쳐낼 힘이 생겼다. 적어도 나는. 남편은 내가 싸운다고 했으니 저러나 보다 하고 나를 최소한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가장 먼저 내 바람과 언짢음을 인식하고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마치 저만치 산 위에 모여 앉은 새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큼 막막하고 막연했다. 그간 큰 싸움 내지 않으려고 오랜 시간 참다 보니 내가 왜 언짢고 뭘 바라는지 나조차 알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인식하고 애를써서 문장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이유도 모르고 화나고 짜증 내는 찌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상황만 언짢은 상태로 꾹꾹 참고만 있으니 막막하고 긴장감 높은 싸움이 만들어졌겠구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싸울래도 내가 뭘 바라는지 알 수가 없어 말을 못 해 싸울 수가 없이 애만 끓다가 나의 감정과 바람을 문장으로 표현하려 고심하며 글로 써 보면서 조금씩 서로의 어려움과 욕구를 살피다 보니 나와 남편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선 나의 경우. 타인에게 내 소소한 요구조차 전달하길 두려워하는 성향 이어서 사실 남편이 아닌 그 누구와도 가볍고 솔직한 대화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솔직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 까지 찾아내게 되어서 남편이 아닌 나의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괜찮아 거부당해도 돼. 누구라도 나와 다를 수 있고 싫으면 거부할 수 있어. 거부하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야. 당연한 거야. 그럴 수 있어'라며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 노력했다.


남편의 경우. 유독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타인의 질타를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실수를 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어도 그 감정의 정체를 잘 모르고 불편해진 마음 때문에 되려 이런저런 짜증을 냈던 것이다. 감사 인사를 받아도 뿌듯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럼 그것도 안 하냐'며 상대를 무한하게 만들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남편은 모든 감정에 있어 습관적으로 부정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감정을 축소시키고 혹시 있을지 모를 질타를 방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린 시절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던 일이 있었냐 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꺼낸 '어린시절 집구석'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관심 없다는 식으로 틱틱거리며 대답하는 남편 말속에서 원하는 만큼 보호받지 못한 아픔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서웠구나, 무력하게 느꼈구나, 거칠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감정을 인정해 줬다.


그리고 남편의 잘못된 감정 처리 방법 때문에 내가 불편해지면 남편에게 알리고 감정 처리 방법을 알려 주었다.

'미안할 땐 사과부터 하면 불안이 줄어들어요. 사과받아줄 테니 미안하다고 사과해줘요.'

'사과는 한 번 말했다고 사과 한 게 아니라 상대가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는게 사과예요. 언짢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고 들면 내 상처가 아물 시간을 존중한 게 아니니 그건 사과한게 아니에요.'

'감사는 그냥 뿌듯하게 받아들여도 괜찮아요. 멋졌어요, ' 등등


다양한 감정이 나쁘거나 위험한게 아니라는 것, 감정을 잘 다루건 우리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돈 벌어오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자주 알려줬다.






결혼 초 3년 내외의 시간동안 나는 존재 자체를 거부당할까, 남편은 질타받을 때 주도권을 읽고 큰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며 서로의 대화를 회피 해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 가정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시간을 갖고 서로 믿으려 노력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분노하고 용서하면서 우리 가정에 맞는 규칙이 만들어지고 치유되어 가는데 또다시 4,5년의 시간을 복작 복작 지나왔다.


내가 이룬 가정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치열한 노력은 결투 신청이 시작이었지만 그렇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나와 배우자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안전을 보장해주면서 나는 인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가 가장 잘 알아줄 수 있는 누군가를 얻게 되었다.


결투 신청은 부부간에 막혔던 대화의 실마리가 되었다. 포기가 아닌 내가 이룬 가정에서 안전하고 싶은 간절함이 싸우겠다는 결의로 드러났던 것 같다.


대화의 실마리를 찾던 어두운 시절의 칼날 같은 싸움들이 가족 존패의 아찔한 추억도 만들었지만 뿌듯한 성장도 경험하게 했다.


우리는 깊은 성찰을 갖기 전까지 자기를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그러니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내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하는건 당연하다.


결혼을 했다는 건 성찰의 기회를 만난 것에 불과하다. 콩깍지가 씌어 드레스 입고 결혼식장에서 가족친지들과 사진찍고 온 경험이 내가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일 성찰을 줄 수는 없다. 즉, 결혼을 했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성숙의 시간을 지나와야 나에게 비친 그를, 그에게 비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잘 모른다는 인정. 결혼이 내 삶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기대. 이 두가지를 깨달을 때 부부는 진짜 어른이 된다. 그리고 배우자는 남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어떤 어려움도 내보일 수 있는 깊은 벗으로 변해 갈수 있을 것이다.









다음 편 : 단절된 부부 대화법 3. 대화의 목적

https://brunch.co.kr/@lovingsong/119


* 이제 9년 차 부부로써 암흑의 시간을 무사히 건너온 새내기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부부의 대화가 단절되면 그때부터는 이혼하냐 마냐를 넘어 안전한 가정을 누리고 싶은 바람이 속수무책으로 깨져버린다는 사실을 후배 부부들에게 알려주고 힘든 시기 잘 지나오도록 응원하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편에겐 친정 얘기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