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자 아내 이야기
엄마가 정겨운 전화를 걸어와 수상하게 끊었다.
"김장 김치 보내니까 꺼내 놓지 말고 바로 냉장고로 넣어서 천천히 익혀 먹어. 너희는 부탄가스 쓰지? 아파트로 이사 오고 쓸 일이 없어서 있던 거 같이 보냈어. 된장도 조금 담아서 보내고 고구마는 우리 것 반 덜어서 보내. 어.. 그래... 재미있게, 잘 살아. 그래."
엄마의 랩 하듯 쏟아내는 말에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최대한 생략하고 응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읽혔다. 수상했지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며칠 전 남편에게 친정에 대한 내 감정을 처음으로 이야기했었는데 지난밤 남편이 일 때문에 친정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길 했다는 말이 겹쳤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그동안 남편에게 깊이 있는 친정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친정에 대한 내 감정이 그리 안전하고 포근 하지만은 않아서 새로 꾸리는 내 가정에 못마땅한 지난 상태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만난 지 10년이 되어가니 말 그대로 편한 남자, 남편이 되면서 너와 나의 구분이 많이 사라지고 어느 결에 포장하려던 마음이 흐릿해져 경계가 없어졌다. 그러다 최근 집 문제 돈 문제로 고심하면서 현실에 부딪혀 괴로워하다 보니 속으로 혼자 해결이 안 돼서 용기 내어 이상주의자 커밍아웃을 하며 친정 이야기를 하게 됐다.
친정 식구들은 매우 일 중심적이고 현실적인 반면 나는 감성적인 이상주의자이다.
그러다 보니 성장하면서 가족들의 이해를 받기 어려웠고 수많은 지적 속에 스스로 아무리 이상주의적인 게 잘못됐다고 반성을 해도 고따구로 생겨먹은 기질이 고쳐지지 않아 가족들 말처럼 내가 틀린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어서 뭘 해도 거부당하기만 하는 느낌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내 뜻에 따라 이야기하고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하고 진로를 정하고 나를 꾸미고 다니면 가족들은 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밖에서는 인정도 받고 행복하다고 말하면 남의 말은 모두 허례허식이고 가족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며 내 마음을 한 없이 쪼그라 트렸다.
그게 진정 어린 염려라는 것을 알지만 '너는 잘할 수 있는 선수야, 이렇게. 이번엔 이렇게'이런 느낌이 아니라 '못 알아듣는 답답한 선수에게 다시, 다시, 그게 아니라고!' 재촉받는 느낌이어서 늘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나 스스로도 한심했다.
나도 가족들처럼 잘해보려고 현실적인'척' 노력하면 입이 뒤통수에 붙는 것처럼 일이 이상하게 꼬이길 반복했고 결국 나이가 들수록 내가 누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고 우울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막막하고 우울한 나를 드러냈다가 '거봐라'라며 내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려고 자율성을 짓밟는 지적이 이어질까, 존재 그대로의 나를 거부당할까 두려워 가족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친정 식구들이 못됐거나 나를 미워한 게 아니고 각자의 시선에서는 내가 참 안되고 염려돼서 했던 사랑의 표현임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그저 내가 그들과 소통불가의 이상주의자였던 것이 문제였을 뿐.
어쨌든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고달파 결혼으로 도망치려던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갈등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내가 돈도 없으면서 어린아이들 데리고 시골에서 월세 사는 것을 몹시 걱정하신다.
내 입장에서는 이제 나도 성인이 되어 내 가정을 이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으로 살고 싶고 넉넉하진 않지만 살만해서 사는 건데 부모님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신 못 차리는 딸을 구출할 기회를 살피며 애달파하신다.
일 년에 몇 번 안 뵙지만 은연중에 나를 안타까워하는 태도를 보면 나는 내가 뭔가 크게 잘못됐구나 느껴져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긴 통화를 하거나 가족을 보고 돌아오면 며칠을 우울하기도 했다.
원가족에게도 남편에게도 나름의 입장을 터놓을 수 없다 보니 속 이야기 나눌 곳이 없어 고립된 마음으로 지내다가 이사와 집에 대한 화두가 올라오면서 내 능력, 친정 식구들의 바람들이 떠오르게 되고 또 다시 내가 누군지, 뭘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자존감이 낮아 있는지 표현하고 소통하지 않고는 미칠것 같아 남편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내 두려움이나 걱정과는 달리 '당신이 그런 면이 있다'는 정도의 응답을 했고 내가 나를 대하는 솔직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 할 수 있어서 위로받는 느낌도 받았다.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 만나서 살고 있구나 안도되며 참 고마웠다.
밤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 심드렁한 상태가 기본인 남편은 이전과 다르게 의기양양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저녁 식사 중에 마음 조리며 엄마한테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남편이 친정 식구와 잘 지내고 돌아온 듯해서 마음이 좋았지만 남편의 말을 들을수록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남편이 친정에 다녀와 의기양양했던 이유는 그랬다.
친정 식구들은 늘 나에게 언니 도움받아서 부모님 근처로 이사하라고 요구하는데 나 없이 부모님과 긴 시간 있게 된 남편은 내가 왜 부모님 말을 듣지 않는지 이유를 설명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내가 얼마 전 이야기한 이런저런 상황을 들어 '사실 따님은 부모님이 알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매우 심각한 이상주의자라 현실적인 조언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며칠을 굶어도 내일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니 괜찮다며 결국 굶어 죽을 사람이다. 현실을 전혀 못 보고 생각만 키우다 보니 소소한 말에도 생각을 부풀려 마음 상해하고 상황을 불편하게 한다.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부모님은 물론 남편인 자신도 그녀의 고집을 결코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도 부모님들처럼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인데 나와 결혼하고서 너무 힘들고 이해가 안 갔지만 이제는 나를 다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으며 내 뜻대로 살게 맞춰줄 것이라고 말하고 이제는 친정 가족들에게 부족한 딸을 이해시키는 경지에 이른, 불굴의 의인(?)처럼 말하고 온 것이다.
본인 딸의 답답하고 허황된 면을 평생 걱정했던 가족들은 의사에게 진단받듯 '걔가 그렇다. 그게 문제다'는 반응으로 일관하며 남편 말에 수긍을 했고 남편은 자기 발언을 오롯이 수용받는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이었다.
엄마는 남편과 헤어질 때 '자네한테 미안하네'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턱이 벌어졌다.
아뿔싸. 남편에게 친정 이야기를 한 건 내 실수였다.
편안해진 남편이 내 맘 같다고 여기고 친정 얘길 한 건데 남편은 내 아쉬움과 답답함을 공감하고 진솔한 내 편이 된 것이 아니고 친정 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정을 이루며 힘들었던 이유가 오직 나의 심각한 이상주의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담담히 받아준 고마운 남편이었는데 친정에 다녀온 후 남편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승자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상쾌하게 들뜬 남편에게 언짢은 심경은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최대한 꾀를내어 말을 전했다. "우리 집에다 나를 성격 장애인으로 단정짓고 왔다 이거죠?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시가에 가서 당신 이야기 줄줄 풀고 똑같이 해주겠어" 희번덕!
감정적인 관계를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남편은 별로 자극받진 않았지만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친정식구들에게 부인을 이해시키고 돌아온 순수하고 바르고 선한 승자의 태도에서 '너무 갔나?' 하는 내적 검열의 찰나가 보이긴 했지만 선한 자의 여유는 변함이 없었다.
남편의 행동이 뭐라 딱 잘라 잘못이라고 할 수 없으면서도 뭔가 괘씸하고 속상한 마음이 차올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갈피가 잡히지 않는 화를 토해내지 않고 상황을 넘겨 시간을 지나보내고서야 내 마음을 알수 있었다.
부모님께 나를 이해시키려는 남편의 의도는 나쁘다 할 수없지만 남편에게 속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은밀하게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족 편에 서서 그들과 공감을 나누고 나를 단정 짓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래, 내 삶이 어려웠던 건 내가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갈무리했다. 남편에게도 내 상태를 인정했고 남편을 통해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콕찝어 인식시켰다.
그런데 이상주의자가 상당히 문제인 듯 해도 이쪽 사람은 이쪽 사람대로 좋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현실이 전혀 변하지 않아도 생각만 바꾸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점이다.
이번 일도 해결된 게 없지만 배신감이라는 내 마음을 읽어내고 나니 어느정도 마음에 평정을 찾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잘 넘기고 내가 이룬 가정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선택이 남았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만약 다시 되돌린들 언제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이 친정식구 만나는 순간? 내가 남편에게 내 이야기 한 순간? 이 남자를 만나는 순간? 가족 관계에 어려움이 있던 과거의 순간? 내가 태어난 순간?)
그리고 내 이상주의적 본질이 이제와서 갑자기 바뀌지도 않을테니 이렇게 생겨먹은 내 탓을 한들 나아질 것이 없다. 그리고 생각이 무한대 영역으로 확장 할 수 있는 나의 잣대로 남편을 칼질하는 건 판타지 소설이 될 테니 남편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도 안된다.
나를 이 사건에서 안전하게 꺼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 다음 걸음으로 안내할 방법은 앞으로의 입장을 선택하는 것 뿐이다.
남편은 '편한 남자일까?' 아니면 '남의 편일까?'
앞으로 남편에 대한 마음의 경계를 늦추지 말고 믿음을 적당히 주며 내가 배신당할 기회를 애초에 만들지 말 것인지 아니면 이번 일로 그냥 적당히 못나지고 '그럴 수 있지 나쁜 뜻도 없는데'라며 부부간의 우애를 다질 것인지 말이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