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겨울왕국2 엘사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뻔한 교훈들이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가 문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하면 된다' 같은 표어도 있고 교가에 흔히 쓰였던 '지혜롭고 밝고 씩씩한 어린이가 돼라' 혹은 '지덕체를 두루 갖춘 사람이 돼라'같은 말도 있다. 그밖에도 성실해라. 사이좋게 지내라. 자신감을 갖아라. 즐겨라. 등등
이런 말들은 너무 식상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씹어본 적도 없거니와 씹을 기회가 와도 진저리 치며 퇙! 뱉어버렸다. 뻔하고 고리타분한 말이 몸에 닿으면 몸이 썩을 것처럼. 그런데 40이 넘어도 기대하던 안정감을 찾을 수 없는 나를 바라보다 문득문득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들을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 어린 시절 식상하게 듣던 교훈 안에 답이 있었다.
20대 때 시크릿이라는 책에 온 국민이 흥분했었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우리의 미래는 자신의 믿음과 실천이 그저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이 그 메시지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야 그 놀라운 시크릿은 숨겨져 있던 비밀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시크릿이 어릴 적 집집마다 문지방 위에 복사 붙여 넣기 한 듯 걸려있던 '하면 된다'와 일맥상통함을 느꼈을 때 전율을 느꼈다.
어릴 때는 하면 된다는 말이 묻고 따지지 말고 그냥 하라는 군인정신 같은 무식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된다는 말 그대로 '하면 된다'는 진리를 보지 못했다. 시크릿이라는 책을 통해 그 의미를 들으니 전에 없던 진리 같았지만 시크릿은 안 시크릿 하게도 집집마다 붙여있었고 보고도 모르는 진정한 시크릿이기도 했다.
깨달음으로 다가온 교훈이 하나 더 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준을 잡지 못하고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나는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밝혀지지 않은 진리를 찾아 헤맸다.
어느 날 질문에 답하다 이것을 떠올리며 멍해졌다. 무겁고 방대한 질문의 답을 이미 학생 때 교가를 부르며 내 입으로 답했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무엇이고 어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지덕체'였다. 이렇게 밋밋하고 재미없을 수가!
지덕체를 실천한다는 것은 지혜를 키우고, 너와 나를 더불어 좋게 하는 성품을 만들고, 건강한 몸을 가꿔간다는 것이다. 지덕체를 가꾼 모습은 내가 찾던 어른의 모습이고 성공한 삶이고 행복한 삶이자 내가 희망하는 삶이었다. 이 깨달음을 풀어 말하면 진리를 찾아 물음을 반복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시간에 윗몸일으키기 한 번 더 하고 옆에 있는 사람과 나에게 한 번 더 미소로 응대했다면 더 깊이 있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덕체라는 말이 지루해서 콧방귀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내가 찾아 헤맨 진리가 감당 못할 놀랍고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지, 덕, 체라는 것이 하찮게까지 느껴졌지만 알 수 없이 마음이 가볍고 말끔한 기분도 들었다.
파랑새를 찾아 멀고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 있던 새가 파랑새라는 것을 알아차린 미틸과 틸틸의 이야기 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와 같은 경로를 지나 파랑새는 이미 내 곁에 있다는 경험을 하고 이야기했던 역사 속 수 많았을 인생 선배들과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어린 날에 이미 역사와 사회로부터 인생의 답을 전달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더 화끈하고 대단한 가치를 찾아 방황한다. 그러다 문득 어려서부터 따분하게 여기던 말들 중에 어른이 된 나를 이끌어주는 메시지를 만나 그 메시지에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그 메시지를 후대에 전한다. 내 앞에 모두 비슷한 경로를 거쳐 그렇게 전수해 왔을 많은 인생들과 연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연대감, 소속감, 안도감이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느낄 수 없던 평안함이었다. 어떻게 살지, 어떤 부모가 될지, 장년이 된 내가 어떤 꿈을 품고 살아야 할지 방황하던 시간이 갈무리되고 지금 여기서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면 되는 거구나 하는 삶의 명쾌함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지난 방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대로 잘했다. 내가 여기 왔으니.
겨울왕국 2에서 엘사가 물의 정령과 함께 소리의 근원을 향해 달려가면서부터 자아를 만나는 순간까지 감정이 소용돌이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났다. 엘사 엄마 어린 시절의 울림과 어른 된 엄마의 노랫소리 그리고 지금 엘사의 노래까지, 그 느낌 그대로다. '지덕체 길러~' 하던 내 목소리와 엘사의 '내가 왔죠!' 하는 부분의 크로스 메치. 나를 만난 느낌. 이 안도감이 어른 느낌이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혼란스러운 현실을 살다 각자의 방법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내고 기꺼이 살다 간 엘사와 같았을 수많은 선배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그리고 어린 시절 벽에 붙은 '하면 된다'처럼 조용히 어린 후배들 곁에 붙어서 그들이 답을 알아차리고 위로 속에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너무 따끔하지 않고 끈질기게 곁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다짐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