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에는 아빠 나이만큼 당당히 초를 꽂으세요.
'어떻게 생일을 바꿔?'
딸 애가 의아해한다. 결혼하고 생일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꿔 세기 시작했는데 식사 중에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양력과 음력에 대해 가르쳐 주고 생일에 관련된 나의 레퍼토리 하나를 들려줄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빠와 음력 생일이 같다. 옛날에는 어른 생일이면 잔치 음식을 차리고 친척과 이웃이 모였다. 그런데 케이크에 초를 꽂을 때면 항상 내 나이에 맞게 초를 꽂았다. 형편이 어려워 생일에 케이크 먹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언니와 동생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잘 모르는 어른들이 자기들끼리 신나서 놀다가 초를 꽂으며 갑자기 분위기가 나에게 몰리고 '어머, 생일이지?' 놀란 듯 미안한 듯 인사와 박수 건네는 것이 어색하고 얻어먹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아빠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일을 까먹지 않을 거라며 거하게 취해 즐거워하셨었지만 미안하게도 결혼 후 나는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버렸다. 사실 바꾼데도 잔치를 여는 것도 아니니 큰 의미는 없지만 마음의 독립과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생일을 맞이 하지 못했던 것이 싫었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일을 기회 될 때마다 주변에 알려왔던 터다. 나는 생일 상 하나 혼자 못 받아본 사람이라 불쌍하고 억울하다고 전하고 동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딸 애가 내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동정해 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들었다.
'할아버지 불쌍해.'
'잉? 뭣이라고? 엄마 불쌍한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불쌍하도고?? 왜?'
'할아버지는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못 받아봤잖아. 할아버지 불쌍해.'
머리가 띵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였는데 대 반전이었다. 생일에 있어서 아빠가 불쌍한 부분도 있었겠구나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빠는 내 마음속에 언제나 가해자였다. 술과 친구 좋아하시고 밤이면 늘 고래고래 주정하고 자격지심이 강해 무례하고 강압적이고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 일은 열심히 했지만 아내나 자식들의 마음을 돌보지 못해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나는 나를 인식할 때 그런 가해자를 닮았을뿐더러 아빠의 몰인정과 폭력성 아래 성장해서 자존감이 낮고 쉽게 주눅 드는 나약한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딸애와 대화가 있은 후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윙윙 돌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울컥하고 울음이 쏟아졌다.
몇 년 전 마음 수련을 하다가 내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내 뿌리인 부모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서 인 것을 우연히 깨닫고 6개월이 넘게 '부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기도를 했었다.
나를 낳고 지금의 내가 존재하도록 길러 주신 점,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히 사는 모습 보여주신 점을 생각하면 다른 서운 함은 미미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매일 반복해서 기도했다. 어느 결에 더 이상 의식적으로 감사해할 필요 없을 만큼 그냥 감사하고 행복감이 올라와서 나는 이제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났다. 아직 치유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을 여전히 탓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감정 하나, 속상한 기억 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70이 넘으신 부모님을 떠올려. '당신 탓이오. 당신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인생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고달프게 살고 있소. 내가 잘나서 겨우 이겨나가고 있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고집쟁이요' 내 마음의 부모상에 끊임없이 퍼붓고 칼을 꽂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울컥 쏟아진 눈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죄송함이 밀려와서였다. 아빠가 벌써 70세가 훌쩍 넘은 노인이 되셨는데 40이 넘은 딸아이 끄달림에 여전히 끌려와 아직도 욕을 받아주고 계시는구나 생각 들어 너무 송구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사함이었다. 나쁜 건 죄다 부모님 탓이라 떠넘기고 내 정신 붙잡고 살았는데 부모님 아니었으면 누가 그 탓을 다 받아주고 나를 지탱하게 해 주었을까 생각되니 너무 고마웠다. 나를 지금껏 제정신으로 살린 건 부모님이라는 존재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가슴에 파고들어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 불쌍해' 한마디가 내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던 부모에게 기대어 사랑받으려는 욕망이 아직 거세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했고 내 안에 이유도 모르고 변명하며 나부끼는 부모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제 놔드리고 내가 바로 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와 나의 생일을 분리하고서 아빠 생신에는 아빠 나이의 초를 꽂지만 아빠는 여전히 자기 생일에 나에게 용돈과 축하인사를 건네신다. 그리고 나는 내 양력 생일에 내가 일군 가정에서 내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다시 합칠 생각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돌아오는 생신에는 아빠 케이크에 아빠 초를 꽂으며 인사 전하고 싶다. '아빠, 젊을 때 나 때문에 생일 케이크에 초도 제대로 못 꼽고 아쉬웠을 텐데 여태껏 헤아리지 못하고 내 투정만 듣게 해서 미안해요. 아빠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흥도 많고, 힘도 세고, 교육열도 높고, 웃는 눈이 예쁜 성실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아빠 닮은 딸로 세상에 나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