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내가 성공하겠니?
꿈꾸기 대장이 40을 넘어서며
안녕하세요.
양평에서 가정을 이뤄 살며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다정다감한 송다감입니다.
브런치를 통해서 글쓰기를 시작해서 에세이, 명상, 투자 마인드, 가족 그림책 포함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의 활력 덕분에 하는 일마다 잘돼서 책 판매, 블로그, 유튜브, 주식 투자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어 원하던 자리에 집과 문화공간을 건축하고 지금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운동하고 따뜻한 소통 나누면서 매일 글 쓰고 이웃들과 가까이 지내며 성장과 행복에 대해 사유하는 제 삶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캬, 좋다. 상상만으로도 정말 좋다. 아쉽게도 아직은 가짜다. 하지만 곧 이루고 싶은 내 꿈이다. 그런데 너무나 행복한 꿈이지만 행복이 길지가 않다. 상상 바로 뒤에 이어지는 감정이 조바심이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갈 길이 멀고 막막해서 부지런히 해낼 생각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성공하려면 꿈을 구체적으로 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꿈을 꿔도 마음에 돌덩이 같은 짐이 지워지는 걸 보면 어쨌든 성공이 누구에게나 만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꿈을 생생히 그리는 일은 유년시절 소꿉친구들과 동네 어귀에 모여 앉아 떠들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방학 때도 친구들과 도서관 둥근 책상에 모여 앉아 당당하고 멋진 어른의 모습을 꿈꿨다. 중학생 때는 주말에 신신 분식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아지트에 모여 앉아서 각자의 꿈을 나눴다. 고등학생 야자시간에 칸막이 안에서 공부를 미뤄가며 꿈을 그렸고, 대학생 때도, 사회초년생이었을 때도, 20대에 미친 듯 젊음을 불태우며 달릴 때도, 결혼을 계획하면서도 구체적인 꿈 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꿈꾸기를 좋아했지만 나의 꿈꾸기 습관에는 문제가 좀 있다.
어떤 미래를 살지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상상하고 계획하고 두근두근 설레 하다가 정작 꿈이 구체적으로 정리되면 지레 질려 나가떨어져서 실행하지 못한다. 전혀 꿈꾸지 않은 것처럼 외면하고 계획이 없는 것처럼 뭉그적거리는 것이다. 다행히 잠재의식 덕분인지 꿈꾸던 삶과 엇비슷하게는 살아왔지만 만족과 감격을 크게 느낀 경험은 별로 없다.
요즘도 여전히 꿈을 꾼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결혼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경력은 단절되었고 살림하고 아이만 바라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상화되다 보니 봄이 오듯 간질간질 꿈이 샘솟는다.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가 누구고,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지 어림 잡아지지 않아 끝없이 우울했는데 긴긴 터널을 지나온 듯 멋진 미래를 꿈꾸며 간질간질하다.
그런데 오랜만의 꿈꾸기 임에도 나의 꿈꾸기 습관이 그대로 작동된다. 간질간질 행복해하며 내일로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꿈의 무게에 못 이겨 우울해지고 무력해지는 습관이 작동된다. 글 앞머리에 적어둔 나의 벅찬 꿈을 정리하고 나서 한 이틀 무너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했다. 그때 기억해냈다. ‘난 늘 이랬지?’
어릴 때처럼 똑같이 주저앉지 말고 나를 이겨내고 멋지게 달려 나가고 싶다. 가정을 이뤄 다양한 역할도 갖게 되었고 이제 40도 넘었으니 이전과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40은 내게 정말 기대되는 나이였단 말이다.
어린 시절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 20이 되어서는 30이면, 30이 되어서는 40이면 어른이 될 것 같다 생각이 옮겨 갔다. 2,30을 맞이 할 때와 40은 정말 다를 것이라 다짐했는데 이대로 50을 또다시 기대할 수는 없다. 인간의 기대 수명에 많이 다가왔단 말이다.
40이 되면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거쳐 지나가고 이제는 나의 길에 정착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능력을 발휘하는 나이라 확신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물론 세상살이에 필요한 관계, 능력, 돈 그밖에 모든 것들이 안정적으로 손에 잡혀서 혼돈 없이 신나게 살기만 하면 되는 진짜 어른. 40이 되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이번 꿈꾸기 뒤에 밀려오는 무력감을 경험하며 꿈을 대하는 태도가 소꿉놀이할 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오기도 든다. 다른 태도를 취해보고 싶다. 꿈꾸던 40이지 않은가!
아이 때와 비교하면 당연히 여러 면으로 성장하고 성취하고 안정적인 인간이 되었지만 어릴 땐 꿈을 말하는 게 신나고 자신만만했는데 지금은 부끄러워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꿈을 말하면 듣는 이가 실천에 소홀한 내 일상을 보고 손가락질할까 겁이 난다. 현실감각 없고 상황 파악 안 되는 지지리도 철 안 드는 갑갑한 인간처럼 판단되어 비난할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현실에 적당히 만족하는 척, 열심히 사는 척, 태연한 척 연기하며 꿈을 드러내지 못하고 내 무능을 탓하면서 점점 더 움츠러든다.
습관처럼 멈추지 않고 꿈을 꾼다. 그리고 내 꿈을 직면하면 무기력 해진다. 다시 힘을 차리면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 까먹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꿈을 꾼다. 나의 행동은 마치 거울이 신기해 다가 가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무서워 난리 법석인 원숭이 같다.
내가 원숭이라면 내 글을 거울이라 생각하고 용기 내어 나를 비춰보는 마음으로 글로 꿈을 썼다. 더 이상 나를 보고 놀라 날뛰지 말고 내가 누군지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차분히 생각하고 진화하고 싶다. 역시 40은 다르긴 다른가보다 생각을 하며.
글을 읽어보니 나는 이렇게 생겼다.
첫째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숨 막힘 혹은 지루함을 느낀다.
셋째 자발적으로 묵묵히 실천해서 결국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다.
나는 책임감 없고 산만하고 꾀만 피워서 골칫거리다. 그 판단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캐릭터 정도라서 주변의 질책을 외면하고 내 꿈을 향해 걸어갈 만한 자신감, 당당함은 없다. 타인의 질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오직 '당신에게 별 신경 안 쓰고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태도에만 집착해서 살고 있다. 이런 나 따위가 멋진 꿈을 직면하면 부담스럽다. 나는 나약하고 지질해서 아무 능력이 없으니 멋진 삶 앞에 무기력해진다.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알겠다.
나 같은 사람에게 '꼭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여기서 행복하면 돼.'같은 말은 지금의 내 감정을 무시하는 말이다. 내가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느끼면 우선 성공을 경험해야 한다. 작은 것부터 성취하는 경험 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성공에 앞서 내 주변 청소부터 잘해서 깨끗한 공간을 내게 선물하자'같은 것 말이다. 종종 이런 식으로 다가갔다가는 더 무기력해진다. '이것도 못하면서 무슨 성공이냐'라는 생각에 더 쭈그러들기 때문이다.
이대로 행복해지거나, 청소로써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은 안 통한다. 그래도 청소부터 생각해 보자.
청소와 정리를 못하는 이들에게는 청소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어렵다기보다 귀찮고 하찮다. 하찮고 귀찮은 일상을 꾸준히 해내야 성공할 텐데 나는 성공만 하고 싶고 하찮고 귀찮은 건 안 하고 싶다. 마치 달고 맛있는 것만 쏙쏙 빼먹고 책임지는 것 없이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보니 살짝 모자란 듯이 그러려니 인해 받으며 살고 싶은 찌질이 밉상 같다. 거울 속, 글 속의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영락없이 내가 맞다.
번지르르 말만 멋있게 해서 이리저리 불편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은 샤샥 피해가며 살려고 했다. 덕분에 별 볼 일 없는 일도 피하지만 성취, 성공의 기회도 타지 못하고 샤샥 피해 가다 보니 거울에 비친 내 꼴이 지질하고 못마땅해 인정하지 않으며 난리 부르스였나 싶다.
가끔 컨디션 좋을 때 몰아쳐서 최고치를 찍어 그 모습을 나라고 착각하고 컨디션이 보통으로만 내려와도 내가 하는 일들이 다 별 볼 일 없고 무능력하게 생각된다.
꿈을 솔직하게 쓰고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성공을 행복이라 여기면서 성공을 위한 귀찮고 하찮은 일은 피하려고 폴짝거렸다. 부모 형제의 질책이 두려워 '내가 해야 할 일' 보다는 '내가 알아서 잘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부모 형제가 내가 잘못되었다 질책할 때 자존심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세상에 없던 성공의 길을 찾아 잘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들여다보니 나도 속이고 있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나를 무능하고 나약하다 깔보고 있었다. 잘난 척하며 살다 보니 눈만 높아져서 최고가 아니면 못났다고 생각하는 누구보다 고까운 판단 잣대를 들이대는 나였다. 원하는 것에 몰입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털어낼 용기가 없는 나. 이대로 괜찮을까?
"거울아, 거울아 내 모습이 형편없구나. 내가 성공하겠니? 내가 행복하겠니?"
"주인님, 주인님은 이 세상에 태어난 고귀한 생명체이십니다. 누구나 각기 다른 성장 과정과 환경의 영향으로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 으를 갖고 나름의 삶을 누리다 세상을 떠나갑니다. 주인님이 느껴온 부족함과 아쉬움을 솔직히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왜곡 없이 세상을 만끽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럼 행복해지니?"
"자신을 비난하고 깔보는 못된 버릇 알아채셨으니 이제 바뀌어 갈 겁니다. 꿈꿀 때 부담과 무기력을 느끼게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녀석을 정확히 알아보실 수 있으니 '너는 내가 아니야, 저리 가!' 내 치실 수 있습니다. 이제 꿈꾸는 것만으로도 계속 행복할 수있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상이 행복입니다. 꿈의 인생을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으니 결국 성취하고 더욱더 행복해질 겁니다."
"너와 함께라서 좋다. 나는 거울 너만 믿는다. "
("나는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