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중요한 세 가지 이유
초등학생 때 숙제로써 일기를 썼었다. 일기는 검사받는 것, 선생님이 보게 되는 것이 전제된 글쓰기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몰래 읽으신 엄마라는 독자도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되어 일기를 쓰려고 할 때 자꾸 독자를 의식하게 된다. 남편이나 아이 혹은 모르는 누구라도 나중에 보게 되었을 때 나를 이해받고 공감받을 수 있게 꾸며 쓰고 싶었다.
'도대체 일기를 왜 쓰는 거지?'
그때도 그렇고 얼마 전까지도 이해가 안 됐다. 학생 때 일기 쓰기는 방학에도 빠짐없는 스트레스 강한 숙제였다. 그렇게 강력하게 나를 압박했음에도 나는 일기를 도대체 왜 쓰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와 다름없는 비슷한 생활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실생활에 서 벗어난 부수적이고 쓸데없는 일 같았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어도 지워지지 않고 일기를 왜 써야 하나 계속 궁금했다. 학생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나? 관리가 필요 하나? 기록이라는 것에 엄청난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성공한 사람들이나 지적인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일기를 쓰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에 나만 모르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일상을 기록하는 거냐고!'
우연히 풀리지 않던 답을 찾았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돈을 어떻게 버나 치열하게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다. 일기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강조해도 될만한 쓸모 있는 숙제였다. 그 쓸모 있는 숙제를 쓸모없이 해버려 속상하다고 느꼈다.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세 가지!
우선 일기는 '사색'하게 한다. 사색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몇몇 역할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 사색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 인간다워진다는 것과도 같다. 때문에 사색의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기는 오늘 하루 일어난 일, 그에 대한 나의 감정과 입장을 돌이켜보고 정리하게 한다. 기록해서 미래의 나 혹은 누군가 보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사색의 도구로써 일기를 쓰는 행위는 절대적이다.
또 다른 일기의 힘은 '정의 내리는 것'이다. 정의 내리지 않은 문제들은 뇌에 안정적인 고리를 만들지 못해 잡념이 되기 때문에 맥락 없이 튀어 오르고 사라져 인간 성숙에 비효율을 만든다.
일상에서 수많은 상황과 관념을 경험하고 익숙해지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될수록 쉬워지는 일도 많지만 많은 부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휩싸여 힘겹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 차이는 '얼마나 많이 사색해서 정의 내렸느냐' 하는 차이에서 난다.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정의 내리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 사람과 답하지 못한 문제를 싸 짊어지고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다시 사전을 펼쳐 문제를 풀려고 바둥거리다 다른 문제에 밀려 어물쩡 또 넘겨버리는 사람의 차이는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 성취, 안정, 행복 면에서 많은 차이를 낼 수밖에 없다. 깊은 사색을 통해 정의 내린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안정적이고 확신이 강해져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정의 내리기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다. 나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데다가 관계중심적이고 타인의 비난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하려고 바둥거리다 지쳐서 이내 무기력해지는 사람이었다. 사람에 대한 공부하고 사색하며 '나'를 정의 내리기 전에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나를 막연하고 무겁게만 느꼈고 스스로 답답하고 한심하게 생각했다. 마치 내 마음이 종이장 같아서 세상 모두가 나의 나약함을 꿰뚫고 있어 쉽게 밟아줄 수 있는 나약한 관역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찌질하지만 나를 구체적으로 정의 내리고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알게 되니 안정이 되었다. 나를 알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됐다. 마음을 배운 여자이니 더 행복해지자 마음먹고 인정에 수용을 더했다. 우선 예민해도 돼. 두려움이 많아도 돼. 쉽게 지쳐 쓰러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나빠져도 괜찮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고 몇 날 며칠 나를 안심시키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마음이 변하니 현실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관계와 행동에 뒤얽힌 복잡한 고민과 문제들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사라락 바뀌면서 허전한 듯 뻥 뚫린 생각의 여유 공간을 만들었다. 횡격막에 묵여 있던 밧줄 하나가 툭 풀려 올라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과 태도를 정의 내리고 마무리 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통쾌함도 있지만 익숙하기 전에는 불안감과 박탈감을 느끼게도 한다. 다행히 일기를 쓰다 보면 생각을 마무리 짓는 연습을 하게 되면서 다음 단계로 가볍고 빠르게 넘어가는 훈련을 할 수 있어 좋다. 나아간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설렘을 갖고 다음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 내리는 연습을 하기에 일기만큼 괜찮은 도구도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일기의 가장 큰 힘은 '인생의 관점을 나에 두는 것'이다. 일기 쓰기의 장점 중 이것의 발견이 나에게는 가장 획기적이었다. 지금까지 일기를 쓰면서 이 부분을 완전히 놓치고 썼기 때문에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고 생각됐다.
매우 관계중심적인 사람으로서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모든 일에 중심이 되어 살았다. 타인을 의식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소양은 어른스러운 모습이지만 나처럼 타인의 생각과 좋은 관계를 '모든 일의 중심'에 두는 것은 우울감, 좌절감, 불안감, 고립 감등을 키워 자존감을 저기 깊은 지하 세계로 보내버리기 때문에 행복과 성공을 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기를 쓸 때 '나'에 관점을 두는 글쓰기를 한다면 아름다운 성장과정, 건강한 부모와 친구 없이도 안정적인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확신을 못해서 방황할 뿐 내가 내린 답 언저리를 서성이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에게 관점을 맞춰 글을 쓰다 보면 자기 확신을 갖게 된다.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고,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쓰다 보면 내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되고 비로소 어렴풋이 정해 놓은 답을 실천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내 선택을 책임질만 하겠다는 큰 그림을 일기장의 글씨로 직접 확인함으로써 내 결정을 확신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기는 그 어떤 소중한 이의 이해보다 중요한 나에게 받는 이해와 위로가 될 수 있다.
일기는 어찌 보면 내면에게 하는 인터뷰 같다. 세상은 괜찮은 사람이 아니면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 인터뷰한다는 것은 내가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전제된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쓸만한 나에게 감정과 생각을 묻는 인터뷰를 청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확히 원했던 그 답을 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일기는 내가 죽는 날까지 나만을 위한 나의 멘토와 인터뷰하면서 길을 찾게 해 준다.
요즘은 일기보다 브런치 글쓰기를 많이 하지만 왜 일기를 써야 하는지 정의 내리고 일기 쓰기를 통해 언제라도 위로받고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나는 그냥 계획된 하루를 바지런히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마음이 탱탱볼처럼 짱짱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일기는 누구라도 써야 한다. 인생의 길 위에 방황하는 사람은 물론 글씨를 잘 모르는 아이라도 그림으로라도 써야 한다. 방학이고 명절이고 따질일이 아니다.
다만 이슈에 대해 사색하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정의 내리는 일기의 순기능을 알고 자기 치유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 안정과 성숙이라는 일기 쓰기의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과 잘 보이고 싶은 욕구를 배제할 수 있는 비밀일기를 써야 한다.
만약 내가 부모라면 아이가 일기의 순기능을 익히도록 일기 쓰기를 모범 보이며 '일기는 네 마음속 친구들을 글로 만나는 거야' 존중해주고 함께 써야 하고 아이가 일기의 순기능을 이해한 후에는 절대 보지 말아야 한다. 궁금하면 일기를 다 쓴 후 감상을 나누는 정도로 만족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생각 뒤에 숨은 나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의 장소에서 조차 과장하고 두려워하게 되어 아이에게 마음 키울 기회를 뺐을 수 있다. 그러니 혹시 보게 되더라도 일기 내용만큼은 절대 비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꺼내보지 않을 정제되지 않은 속마음까지 평가받는 다면 약이 될 일을 독으로 만들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