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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Nov 02. 2020

배설하듯 글을 쓴다

자격 지심 씨 좀 지나갑시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생각이 많고 자격지심이 심하고 자존감은 낮고 정리를 못하고 지저분하고 의존적이다. 다른 한 사람은 이해의 폭이 넓고 경험을 중시하며 탐구심이 강하고 자유롭고 편안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우울하고 후자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은 같은 행동을 다른 입장으로 적은 것뿐이고 이건 두 사람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의 성향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나는 나를 지질한 전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나는 누가 봐도 긍정적인 면이 있는데 나는 왜 나 스스로를 못나게만 보는지 모르겠다.


사실 정말 모르기만 한 건 아니라서 나의 후진 잠재의식을 바꿔보고자 집안 여기저기 긍정의 메시지를 적어 붙여 두고 산다. 수시로 바꿔보고 암송하고 명상하며 긍정적 사고를 끌어올려 기운을 차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일 순간에 나의 모든 행동이 내가 나약한 증거일 뿐이라고 느껴져 보이는 성과도 없으면서 인생 살이 다 터득한 듯 써놓은 글귀를 보며 스스로 꼴 보기 싫고 무기력 해져버린다. 


나를 믿고 자신 있게 잘살아보고 싶은데 본질로 들어가지 못하고 '삶이 어쩌고 행복 어쩌고' 하면서 평생을 배회하는 지질한 내가 밉다. 누가 기대하지도 않는데 혼자 날 좀 보라며 불을 지폈다가 또 갑자기 우울해하며 찌질이 모드로 들어가는 나를 남편이 몰라주길 바란다. 사람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의 공감 능력과 표현력의 문제로 언짢은 날도 많지만 그 성향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세상 모든 것에 양면이 있음에 감사하기도 한다.



요즘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싸고 있다. 이유는 마려워서다.

 

안 그래도 자격지심 품은 생각은 많은데 비워내지 않고 빙빙거리고 살다 보니 머릿속에 부화가 걸린다. 부정적인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내 몸에 약이 될 리 없을 텐데 독을 품은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배출되지 못하고 정리도 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꽉 차서 얽히고설켜 부대끼고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정리할 세가 없어 그냥 쌌다


사념이 깊어져 오랜 생각들이 정돈되고 감정을 해소해 주면 좋으련만 나의 배출되지 못하고 정체된 생각들은 못되고 못난 허상을 만들어 내기만 했다. 허상과 실망을 오가며 스스로에 대한 인식만 점점 나빠지고 있어 이놈의 독 오른 생각들을 싸지르고 싶던 어느 날 이 난리의 원인이 내 자격지심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자격지심 씨 좀 지나갑시다. 뒤에 꽉 막힌 거 안 보여요? 댁이 거기 차지하고 있어서 괜찮은 생각들이 상하고 있다고요! 이러다 정말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들겠어요!'


그 뒤 이런저런 글을 쌀 수 있었다. 싸고 보니 당연히도 자격지심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내 머리에서 빠져나오기 급급한 글들이 많았다. 제정신 인양 붙들고 있으려는 나, 그 안에서 성장하려는 나의 간절함이 보였다.


무겁고 복잡하고 심오한 생각과 깨달음이라 여겼던 것들이 글로 빠져나오고 보니 정말 별 볼 일 없긴 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닌 것에 고민 한 가득 품고 있는 나에게 이해할 수없다는 기울어진 눈썹과 가벼운 미소 머금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라고 충고할 법한 그냥저냥 한 나를 글로써 만났지만 그런 나를 세상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그냥 쌌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시원하고 기분 괜찮았다.


맞다. 지구 상에 내가 그리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어딘가 나처럼 엉켜있을 사람들이나 육아 우울증으로 쭈그러든 이들과 글로 만나게 되고 서로 공감과 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니 기분이 더욱 좋았다.


글을 쓰기보다 싸야겠다는 마음가짐 덕에 두려움이나 잘보고 싶은 마음 따위 치워버리고 내 생각과 입장만 말할 수 있어서 글 싸는 게 더욱 시원했다. 꽉 막힌 이야기가 빠져나가느라 안간힘을 쓰는 건 고통스럽지만 결국 통쾌하니 다 괜찮다. 아직은 조금 더 변기에 앉아 여훈을 가시며 더 싸고 나서야 이제 진정하고 자격지심 따위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조금 더 맑게 비워지는 느낌이다.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리 고급진 음식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쓰레기이듯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쟁여놓은 뒤죽박죽 메모와 글감들은 힘주어 싸지 말고 지금 여기 내 안에 그리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신선한 일상과 이야기 감에 감사 느끼고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글 싸기의 통쾌함과 재미를 알았으니 쓰지 않고 싸기만 하는 작가가 되진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덕분에 나에 대한 인식도 조금 나아졌다. 글 쓰는 내가 좋아졌다. 나도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지난 날 자격지심을 만든 이야기를 싸며 통쾌한 치유와 위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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