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서운 이야기를하는 거야?

아이에게 공포를 경험하게 하는 적절한 방법

by 송다감

어린시절 학교 전설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나눌 때 보면 여러 유형의 아이들이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 좋다며 불 끄고 달려와 더 해달라는 아이

무서운 거 싫다며 쭈그리고 계속 듣는 아이

귀가 아프도록 귀를 막고 세어 들어오는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주문 외우며 귀를 손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한다.


나는 후자 쪽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름철에 코미디에서 웃기는 귀신 분장만 하고 나와도 불쾌감과 두려움에 화를 내고 애들 코믹 영상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거나 만화에 귀신 얼굴이 그려지기만 해도 몹시 언짢아하는 쫄보 겁쟁이다.


이런 쫄보 겁쟁이가 며칠 전 '여우누이'라는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게 되었다.


1학년이 된 큰 애가 도서관에서 몇 번 보던 거라며 빌려왔는데 수업 중에 온 책 읽기 했던 책이라 친근해서 인 것 같았다. 제목만 들어도 무서운 이야기 같은데 선생님이 학급 일기에서 아이들 모두 시시해했다고 하고 큰애도 직접 빌려온걸 보니 읽을 만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 숨기고 읽기 시작했다.


판화 같은 그림부터가 무서웠다. 배경 그림도 무섭고 인물들 화법도 무섭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뒷장으로 넘길 때마다 공포가 커져 심장이 쪼이고 어지러워졌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던 가닥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연기하며 무섭게 읽어 줬지만 내 안의 아이는 '안 들린다 안 들린다'펄쩍거리며 현기증 속에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왜 무서운 이야기가 애들 보는 그림책으로도 나오는 거냐고!'




애들 어릴 때 그림책 관련 부모 교육에서 무서운 책이 주는 공감의 효과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선생님도 온 책 읽기로 무서운 이야기를 고르신 걸 보면 뭔가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감이 오지 않아 학급 소통방에 무서운 글을 왜, 어떻게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하는지 묻는 글을 쓰게 됐다. 신기한 것은 감이 안 오던 물음을 글로 쓰고 생각하고 계속 찾아보다 아무도 답글을 달지 않았지만 답을 찾았다.


'담력(용감하고 씩씩함)'이라는 단어의 발견이었다.


담력, 쉬운 말인데 처음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담력이었다는 걸 훅하고 알아차렸다. 답을 찾을 것 같은 설렘에 공포와 담력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한 스노보드 카페의 댓글에서 해답을 찾았다.


무서운 코스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이기고 담력을 기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안전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하면 용기가 생긴다는 글을 남겼다. 그다음은 더 센 상급 코스를 다녀오면 좋다는 글이 있었다. 개중에는 여기저기 몇 번씩 부서지고 난 후에는 괜찮다고 겁주기도 했다.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는 방법은 더 겁주고 계속해서 겁먹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하다는 보호 감이 공포에 맞서는 최우선 과제였다. 안전감 속에서 자극에 자꾸 노출되거나 수위를 높이는 것이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두려움을 느끼는 한계를 스스로 높여 갈 수 있구나, 안전감을 통해 공포를 이길 수 있구나 알아차리는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무서운걸 못 보는지 알게 되었다.




옛날에 '전설의 고향'이 인기였는데 그게 참 무서웠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간혹 자료 화면으로 보게 돼도 무서운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싶다.


5세 전후였을 어느 날 삼촌 이모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이게 되었다. 밤에 전설의 고향을 한다고 모두 둘러앉았는데 나는 '보지 말자. 돌려달라' 했지만 들어줄 일 없었다. 보지 못할뿐더러 소리로 들린다며 무섭다고 엄마 품으로 등 뒤로 이불 밑이며 여기저기로 펄쩍거리며 숨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어른들이 어린애가 무섭다고 펄쩍거리는 게 시끄럽고 성가셨는지 귀여웠는지 '가만있어라' 다그치거나 '분장한 거 가지고 그런다'라고 혼내기도 하고 삼촌은 귀신 얼굴 나올 때만 지금 안 나온다며 화면을 보게 했다. 그 한 시간은 커서 무서운 이야기만 들으면 생각나는 첫 번째 레퍼토리였는데 아마 그때 귀신에 대한 무서움도 컸지만 나의 두려움에 대해 대중에게 보호받지 못했던 불안한 기억 역시 귀신에 대한 기억으로 각인되어서 무서운 이야기만 들으면 안절부절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쓰지 못하고 당하는 느낌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불안을 보호받지 못한, 안전하지 못한 두려움이 내 공포감의 핵심이었구나 알게 되고 거부감을 인정받거나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등 안전을 확보한 후에 가능한 정도에서 한 단계씩 경험을 늘려가면 공포를 이기는 담력이 생기는구나 방법도 찾았다.


신기하게도 생각을 거의 정리했을 때 둘째가 '여우누이'책을 가져와 또 읽어 달라고 했다. 만지지도 못하겠던 책이었는데 앞 뒤로 돌려볼 만큼 좀 괜찮아졌다. 읽으면서 '그림이 무섭구나. 귀신이 무섭구나.' 두려워하는 나를 인정해 주니 그림을 찬찬히 보며 생각을 나눌 수도 있었다. 내일쯤 또 읽으면 또 다를까? 호기심도 생겼다.


공포는 내가 당해야만 하는 감당 불가의 두려움이라 느꼈는데 '내가 지금 두렵구나. 그런데 궁금하기도 하구나. 이렇게 그렸구나' 찬찬히 받아들여주니 감당도 되고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용감해진 듯한 기분이 꽤나 근사했다.


'무서운걸 도대체 왜 보는 거야!' 엄마가 되어서도 이해도 안 가고 분노하며 지냈는데 '공포감을 통해 담력을 키우고 조금씩 용감해지면 자기 자신을 믿는 힘도 커지는 거구나' 알게 되니 '나는 공포감을 활용할 수 있다' 생각되며 이젠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이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늘 자신감이 부족한 나에게 필요한 건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어쩌면 안전감을 보장받은 담력이었을지 모른다 생각되었다.


공포를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으쓱하긴 하지만 다시 여우누이 구글링 하고 이미지를 마주하는 순간 여전히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이전처럼 언짢고 화나지는 않으니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이다. 담력이 하루아침에 커지는 것은 아니니 어린아이들이 보는 무서움에 대한 책들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봐야겠다. 자신감 있고 용감한 나 그리고 내 아이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서운 책을 읽어줄 때 내 경험이 반영 되어서인지 나도 무서우면서 더 무섭게만 만들려고 했는데 이젠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알겠다. '지금 무섭구나. 엄마도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콩콩 뛰어. 그래도 함께 있으니까 괜찮아. 보기 싫으면 보지 말자. 그런데 자꾸 보다 보면 점점 안 무섭고 용기도 점점 커져서 씩씩해 지니까 꼭 다시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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