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름다운 부업

둘째 딸의 엄마 전상서

by 송다감

어린 시절 똥바다라 불렸던 인천 부두 근처에 살았다. 엄마는 지역에서 가능한 부업을 주로 하셨는데 예를 들면 그물에 밧줄 꿰기, 굴 까기 같은 것이다. 값이 안쳐지는 고된 일이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는 따뜻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봉투 붙이고 인형 눈알 붙이는 부업이 흔했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스케일이 달랐다.


엄마가 작업하는 그물 한 덩이는 커다란 솜이불보다 두 세배는 컸다. 우리가 살던 10평짜리 작은 집에 십 여 덩어리의 그물을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하나씩 펼쳐서 작업을 해야 했다. 엄마가 그물을 살포시 펼치면 방안을 꽉 채우는 어마어마한 볼륨감의 유혹에 빠져 저절로 그물에 온 몸이 던져졌다. 새 그물에서 나는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를 맡으며 행복하게 그물 덤불 위를 뒹굴다가 엉키면 안 된다고 내려오라는 엄마의 고함 끝에 유혹을 거두고 그물 밖으로 밀려 나오곤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커서는 엄마를 도와 허리 아파가며 일을 돕기도 했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단순 동작이며 엄마의 카리스마가 멋져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다. 엄마 곁에 붙어 그물 이불 무릎에 덮고 꼬물꼬물 그물 꿰며 조잘조잘 이야기 건네던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도 포근하고 따스하다.


또 다른 부업은 굴 까기다. 굴은 겨울에 깐다. 연탄아궁이를 품은 두 평 남짓한 마당에 굴 포대를 잔뜩 쌓아놓으면 시원하고 비릿한 뻘 냄새, 바다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종종 마당에 있던 연탄아궁이를 열고 먹기 좋은 굴을 골라 그 위에 껍데기째 구워주셨다. 커서는 다시 맛보지 못한 꿀맛. 날카로운 칼과 뾰족한 굴 껍데기에 다치기도 하지만 알싸한 연탄가스 맡으며 먹었던 따뜻하고 향긋한 굴 향은 그리운 맛과 향다.


나도 굴을 잘 깠다. 굴 몸통을 왼손에 잡고 짧은 칼로 굴 꼭지를 찌르고 비틀어 뚜껑을 걷어내면 판판한 윗 뚜껑에 굴이 붙어있다. 굴 딱지에 붙은 굴 눈을 긁어서 굴을 떼어내 큰 그릇에 퐁당퐁당 모으면 된다. 어린 내 몸집 만한 굴 포대 하나에서 냉면 대접 하나 정도의 굴이 모였다. 허리도 아프고 손도 쪼글쪼글 불고 손 시리기도 했지만 이 역시 엄마 곁에 붙어 조잘거렸던 따뜻하고 그리운 풍경이다.




엄마의 부업을 한 창 따르던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커서 엄마가 될 거야. 재미있는 부업도 하고 돈도 벌고 엄마가 멋있어."


허리가 아파도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문득 추억에 잠기다 엄마 생각이 났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엄마도 그때를 따뜻하게 기억하실까?' 엄마가 된 나로서 돌이켜보니 엄마는 나와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아하는 엄마와 딱 붙어있을 수 있고 책임감 없이 가끔씩 했으니 좋은 추억일 수 있지만 가정의 주인 된 마음으로 일감을 받고 마감에 쫓기는 마음은 달랐겠다 헤아려졌다.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 엄마 일상을 돌이켜 봤다.


우리 집도 그 시절 여느 집처럼 순탄치는 못했다.


성향 다른 세 아이는 맨날 싸우고 투닥거렸다.

엄마 눈에 빠지는 것 없이 잘하고 대견하지만 살갑지 않고 동생들에게 권위적인 큰 딸,

바른 길은 잘도 피해 가고 뭘 해도 억울해하는 둘째 딸,

아들이라 존재 자체가 아름다웠지만 누나들의 시기 속에 깡 부리는 개구쟁이 막내아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은 밤이면 밤마다 '악악' 싸움 소리 자아내며 집안과 동네를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다.


( 커서 생각하니 엄마, 아빠의 심리적 상황이 이해된다. 셋째 아들인 아빠는 예민한 성격탓에 성실했지만 할머니께 인정받지 못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좋은 머리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지 못한 서러움을 술 주정과 화투로 풀었다. 매일같이 새벽부터 일을 다니는 아빠의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의 안 주인을 맡은 첫째 딸 엄마는 어떻게라도 살림을 일으켜 보려고 가능한 추진력을 풀가동하셨을 것이다.)


내 기억의 엄마 부업은 너무 따뜻했는데 엄마 기억 속 부업은 고된 삶 속에 쉬는 시간도 없이 허리 구부리고 앉아 손가락 멈추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했던 차가운 시간이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무거운 굴 포대와 거대한 그물 묶음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좁은 집에서 많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냈다. 엄마가 더 많이 일 해야만 없는 살림에 아이들 입에 뭐라도 더 물릴 수 있으니 힘들다고 쉴 수도 없고 맨날 허리에 압박 보호대를 차고 끙끙거리며 그물 뭉치와 굴 포대 앞에 앉았던 정말 치열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 고생은 항상 보는 것이라 너무 뻔했다. 그래서 나도 엄마 고생을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추억에 잠기다 보니 내 추억은 엄마 입장이 배제된 오직 나만의 아름다운 추억이었구나 생각됐다.


죄송함과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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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추억 끝에 반성의 시간을 마주하는 감동의 순간. 느닷없이 내 안에 내재된 비난이 갑작스럽게 밀려 나왔다. '이렇게 둘째들은 뭘 모르고 지만 알아. 한심해.'


어려서부터 악을 쓰고 진저리 치며 거부하고 싶은 '한심하다'는 말. 인정받고 싶은 둘째의 자격지심이 난데없이 뿜어져 올랐다. 내가 한심 한 건 비난 아닌 사실일지 모른다고 받아들이며 엄마에 대한 생각에 머물려고 하는 순간 알게 됐다.


어쩌면 엄마의 고된 부업이 내게는 이리도 아름답게 추억되는 건 부모의 깊은 관심을 갈망했던 나의 내재된 자격지심 때문에 엄마랑 둘만 딱 붙어 있던 그 시간이 내게 이리도 소중한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둘째라는 나의 출생 순서 덕분에 언제나 더 관심받고 싶어 했던 내게 아무리 힘들어도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엄마가 참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내가 참여하기만 한다면 엄마의 부업 시간은 내가 엄마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조잘거리며 공감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엄마의 부업을 따뜻하게 기억하는 건 아닐까?


엄마의 고통 뒤에서 행복해하는 아이 모습이 사이코패스 같이 생각되기도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인 엄마의 고달픔보다는 엄마 곁에 딱 붙어서 조잘대며 칭찬받던 그 순간들이 그립고 행복한 건 사실이다. 그물의 볼륨감, 탁탁 까지는 굴 딱지의 재미와 기분 좋은 향기들이 내겐 행복감을 주는 소중한 풍경이다.




어느덧 나도 커서 어린 시절 꿈꾸던 엄마가 됐다. 엄마도 되었으니 이제 나더러 따뜻하고 그립던 엄마의 아름다운 부업을 하라고 하면 꿈을 이뤘다며 좋아라 하진 않을 것 같다. 그 고단함을 현실적으로 상상하게 되니 엄마의 위대함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와 지난날 나의 엄마를 가만히 비교해 봤다.


나는 예민한 아이로 태어나 상처 많은 성인으로 자랐다. 그래서 내 마음 치유와 내 아이의 안정적 정서 발달에 집중 혹은 집착하며 상처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마음에 대해 배우고 또 배우며 살았다. 지난날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마음속으로 원가족에게 책임 물어 거리를 두기도 했고 보란 듯이 위로와 격려가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살겠다는 결의에 차서 마음공부에 몰두했다.


엄마는 그 시절의 엄마들과 똑같이 먹고살기 바빠 마음을 돌 볼 줄 몰랐고 마음 치유나 아이 발달 같은 것도 몰랐다. 그저 굶지 않고 아이들이 잘 배워 성공하길 바라는 단 하나의 기도로 매서운 호흡 내 지르며 닥치는 대로 붙잡고 열심히 살았다.


'부모를 발판 삼아 치열하게 오늘을 맞이한 나는 내 엄마보다 더 나은 엄마가 되었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나?' 겸손이 내려앉아 긴장된 내 어깨를 가만히 가라 앉힌다. 앞으로도 그녀 만큼 훌륭하진 못할 것이다. 다행히 이제 더 이상 괜한 비난과 잘난 척은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영재 씨, 가난과 고난의 힘든 시절 잘 지나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시간까지 기다려준 엄마 덕에 행복한 가정 꾸리고 행복하게 삽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엄마에겐 너무나 힘들었을 그 시절, 엄마 딸은 어떤 이유로든 그 시절이 따스하고 행복했어요. 과거의 힘든 순간이 엄마 딸에게는 아름답게 추억된다는 것이 엄마에게도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존경하고 사랑해요. 내 엄마 영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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