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1편
20년 전 이력서를 한창 쓰던 젊은 시절, 누구나 자기소개서 맨 앞단을 이렇게 시작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아래서 근면함과 성실함을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우리들 가정을 이렇게 인식하고 살았을까?
이력서를 쓸 때는 형식적이라 아무 반성도 없었지만 삶에 대한 사색이 깊어질수록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이 다수의 인식이 이력서와 같았다면 지금의 사회는 더 건강한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누구나 썼던 공통의 문장에 담긴 내 생각은 이랬다.
'아빠는 안하무인에 폭력적이고 엄마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희생적이었습니다. 수시로 심장이 타들어가는 부부싸움에 노출되었고 쉽게 비난받고 외면당하며 나는 고집불통에 부족하고 속 터지는 골칫거리라는 인식을 갖고 성장했습니다. 덕분에 사람 눈치를 잘 보고 내가 불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서 잔머리 굴리기 급급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도 찾아도 헷갈리고 무언가 꿈꾸는 바가 있다는 걸 세상에 말하기 두려워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보지 못하거나 울컥 눈물만 흘립니다. 나는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기대는 어울리지 않는, 허우적거리는 지금이 잘 어울리는, 내가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는 사람입니다'
조금 과격하게 적었지만 거짓은 아니다.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믿음 없이 성인이 된 우리는 흘러 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나아 가정도 일군다. 하지만 유년에 긍정적으로 정의 내리지 못한 불안한 정체성이 만드는 혼란과 막연한 초조함은 스스로 일군 자기 가정에서 본색을 드러내며 더욱 더 확산되기 쉽다. 알고 그러건 모르고 그러건 아이와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할수록 사랑 아닌 불안과 초조함을 더 많이 쏫아내면서 알수 없는 화와 불쾌함을 바이러스처럼 확산시키게 된다.
이제는 지난 가족을 추억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추억이라고 말 할 수 없다면 상처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음으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한다. 가족은 인생의 뿌리와도 같아서 그 어느곳에 남은 상처보다 본질적으로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그 때 시절이 그랬다고, 남들 다 그렇게 살았다고 나도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다.
다행히도 구태여 과거의 인물들과 지금 대면할 필요는 없다. 입장과 기억이 다르다기 때문에 오히려 전혀 다른 상처만 키울 수 있다. 그러니 고요하고 담담한 어느 날 '나는 우리 가족을,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써보고 내 스스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럴수 있지, 잘 지나와서 지금에 있음에 다행이다.' 라며 인정하는 시간 만들어보면 좋겠다.
욕이라도 실컷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법이다. 말로 하지 않고 글로 해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내 마음에 남은 이야기를 꺼내어 들어주고 인정하고 위로하는데서 나의 새로운 가정과 삶을 바르게 바라보는 힘이 생김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