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꽃이야

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 4편

by 송다감

부정적인 정체성을 걷어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어릴 때 마음에 생긴 상처를 꺼내 들고 직시하는 것이다. 보호받고 싶었던, 인정받고 싶었던 그때를 떠올려 이미 어른 된 나로서 '그래서 힘들었구나'인정해주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게 돕는 시간이 갖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그 날로부터 아주 먼 과거로 시선을 돌려 나를 인류 역사 흐름 속의 하나로 느껴보는 것이다.


요즘 내가 어른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글을 쓰면서 상처 받았던 일, 상처 준 사람, 상처의 느낌에 대한 회고와 위로와 내려놓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다면 지금 할 이야기는 내 역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에게서 인간사 전반으로 확장시켰던 이야기다.




인간의 귀하고 천함, 서열이 있던 신분사회 그리고 남성 우월주의의 가부장적 삶을 살아온 불평등한 인류 역사를 비추어 보면 과거는 지금 사회보다 훨씬 더 불평등한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민이나 여자였다면 그들의 불안과 혼돈이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많은 침략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식민지가 된 경험까지 있기 때문에 우리들 안에 내재된 불안과 위축감은 극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사회인 가정 안에서도 인정, 믿음, 배려보다는 서열화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굴복시키는 힘이 작용되었겠구나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가족사가 과거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큰 변화를 겪었다. 1970~80년대를 지나며 대가족 문화가 사라지고 핵가족이 보편화됐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사촌 형제에 이웃사촌까지 관계 맺어져 공동 육아가 가능했는데 엄마, 아빠, 자녀 한 두 명이 생활 공동체의 전부가 되어버려 단절감과 결핍이 생겨나고 부모의 역할이나 피로감이 가중됐다.


이제 사회는 점점 1인 가구화 되면서 더불어 협력해서 생존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간 본성이 곤란을 겪으며 외로움이 저변에 깔렸다. 더욱이 이제는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10년이면 바뀐다는 강산이 3년이면 생활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는 시대를 살게 되면서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외로운 가운데 '지금 여기 나'를 인식하기 어려운 혼란까지 겪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도, 우리 사회도 불만과 외로움과 불안을 겪고 있다.


내가 가족 안에서 경험한 불안과 혼돈은 내 부모가 특별히 부족하고 내가 너무나 못나서 겪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내 부모도, 내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 윗 대의 윗 대에서도 나와 같이 외로움, 불안, 낮은 자존감을 견디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대략 훑어봐도 옛날 옛날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 과거에도 우리나라에서 건강하고 안전한 가정을 경험하기는 어려웠겠구나, 어른 될 아이의 가능성을 믿어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기다려 주는 아름다운 가정은 존재하기 어려웠겠구나 이해된다.


지금 내 감정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보호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고립감을 떨치고 싶은 마음 깊은 불안과 혼돈이 내가 멍청해서 겪는 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불평등하고 두렵고 단절되고 급변하는 혼란 속에서 부정 감정과 혼돈을 대물림 중인 것을 말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한'이라는 정서적 유산을 상속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겪게 된 흔한 일이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 상처, 힘든 기억, 불안과 혼돈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고독감은 좀 가신다.


의식의 관점이 지금 내 눈의 위치에서 지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정도까지의 시간을 동시에 내려다보는 전지적 관점으로 바꾸고 생각해보면 나의 어려움이 좀 작아 보이기도 하고 이해의 폭도 넓어져서 너그러워지는 마음이 생긴다.


너그러운 마음을 내서 상처 받은 나와 상처 준 부모 인생사 전반을 두고 내려 보면 서로 찢긴 모양이 다른 비슷한 들 꽃송이구나 이해할 수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 손에 잡힌 자그마한 꽃송이에 코를 대고 풀향 같이 미미한 그 향기를 가만히 맡는 느낌 받아보면 좋겠다.


모두 다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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