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말이면 되는데

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5편

by 송다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하고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지 못한다. 시세 좋은 아파트를 선택해서 아이들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지내게 한다.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해 주려고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아이와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내 아이에게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쓸고 닦으며 아이가 자유롭게 집을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를 잘 키워 보려고 멋지게 잘 살아 보려고 최선을 다 하지만 목적과 과정에 상당한 괴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를 자존감 높고 행복하게 키우고 싶으면서 내가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드러 내놓는 것이다. '엄마가 이건 절대 하지 말라 그랬지!"라며 아이가 내 상처를 조심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기까지 하고 아이가 그 상처를 건드리면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과격함을 속이 풀릴 때까지 드러낸다.


아이 자존감과 관련한 이 크나 큰 괴리를 좁히기 위해 부모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최악의 유산 그리고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할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루는지 배워본 적 없는 상처 받은 부모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불안과 부정적 정체성이라는 최악의 유산이 집집마다 상속되고 있다. 그들의 소중한 자녀들에게 말이다. 부정적 정체성을 상속받은 이들은 이 좋은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연히 누리는 '자신'이라는 가능성을 경험하지 못한다.


유년에 자기 가능성, 자기 신뢰를 갖지 못하게 되면 '자신이라는 인생'의 기회를 손에 들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 헤매다가 성취를 위해 당연히 공들여야 할 시간을 허비하다가 스스로 뿌듯하고 근사하다고 느끼는 행복감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기 쉽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족 문화를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상처 받은 아이가 자라 가정을 이루어 또다시 자기 아이의 자존감을 빼먹으며 연명하는 잔인한 사회 같다. 자존감을 빼앗긴 아이가 또다시 어른이 되어 자기가 이룬 가정에서 합법적으로 자기 아이의 자존감을 빼먹는 슬픈 현실이 아프고 괴롭다.


인간을 인간답게 누리지 못하게 막는 '부정적 정체성'은 대물림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영화 서편제에서 창 소리에 한을 서리게 하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했던 것과 같이 뭣이 중한지 모르겠는 한, 화병 같은 최악의 문화유산을 우리 대에서 반드시 막았으면 한다. 옛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부모가 되었다면 나쁜 대물림을 끊음과 동시에 두 가지를 더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아이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는 서열 상위 권력자'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어려움을 가족에게 호소할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가장 위로되는 말이 '누구나 이렇게 사는구나'였다. 아마도 안전한 유년을 보내지 못해 반항이 커졌던 나의 사춘기 시절에 내 부모는 자신에게 가장 위로되는 말로 충고를 전하셨겠구나 이해가 됐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 아래서 보호받는 시기에 자신이 부모로부터 누구나 중에 한 명이 길 바라지 않는다. '너는 그렇구나. 네가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힘들구나' 그 말을 원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미숙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수준에서의 조언을 강요하거나 자기 상처나 기준에 빗대어 아이의 어려움이 별 일 아님을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이의 미숙함을 숙지하지 않고서는 당신의 말은 어떤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부모가 가정 안에서 상위 서열에서 굴림하고 있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권력자이기 때문에 의사 전달에 심사숙고하거나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의도치 않게 폭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존중하려는 의식적인 의도가 있어야만 아이와 인격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부모가 주의할 것을 몇 가지 숙지한다 하더라도 어른됨의 태도가 여전히 막막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른 됨의 태도를 갖추고 관용적이고 상냥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신뢰하는 사람을 직접 경험한 경험이 드물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부모가 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억지스럽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설퍼도 노력하는 것이 백 번 나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안전한 부모로서 어설픔이 차올라 너무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나빠질 일은 없으니 말이다. 더욱이 우리의 부모도 안전한 부모의 태도를 배운 적 없지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나를 지금처럼 키워 냈으니 나로서도 안전한 부모가 되기 위한 최선을 선택하고 노력한다면 내 아이를 더 건강한 어른으로 자립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누군가는 어림없다며 반박할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키워지지 않았고 내 스타일도 아니다', '누가 가정에서 그렇게 까지 신경 쓰며 사나', '집에서도 맘 편하게 못하고 피곤하게 어떻게 그렇게 지내나'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반발이 든다면 자신이 이미 자기 가정 안에서 거머쥔 서열 상위의 자리를 내놓기 싫다는 반증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부디 점검해 보면 좋겠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내 부모에 대한 용서와 이해의 시간을 갖은 적이 있는지, 아이들에게는 세상 어디서도 드러내지 않는 성난 감정을 풀어내는 감정 받이로 쓰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어른이 되었다면, 이미 부모가 되었다면 내가 누군지 정의 내리지 못하고 늘 스스로에게 '모지라다' 탓하는 자신을 직시하고 이제 그만 부정적 정체성을 마음에서 떠나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 살아서 꿈꾸고 느끼는 나를 직시하고 지금 나의 바람과 희망을 용기 내어 말하고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자녀에게 주는 '부정적 정체성'이라는 최악의 유산을 상속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고 '건강한 자존감'이라는 최고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길이다.


우리에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혹시 혼자는 절대 못하더라도 내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부모로서의 마음 깊은 본성에 집중한다면 내 아이 그리고 미래를 위해 나의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믿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나로 인한 상처와 혼란이 상속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용기 내어 부정적 정체성을 걷어내고 부모의 권력, 영향력을 인정하고 세심하게 부모의 역할을 해나가는 가정교육 이끌어 가길 소망한다.


자존감, 상처, 치유, 부모의 역할..

너무 어려워 좋은 부모 되기를 포기하고 싶을 땐 이 말이면 된다. 내 부모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엄마는 이랬어. 괜찮아, 네가 원한다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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