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모르고 준거니 사양할게요.

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6편

by 송다감

부모에게 받은 나의 상처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흘러오다 내 부모를 거쳐 나에게 전해진 유산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관점으로 지금까지 싸 짊어지고 있는 유년의 상처를 돌아본다면 나에게 남은 문제는 그 유산을 받을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 하는 선택이 남을 뿐이다.


'부정적 정체성'은 우리 부모도 알고 물려준 유산은 아니다. 그 윗 대에서부터 고난과 역경의 사회를 거쳐오며 중대하고 급한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린 자녀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보호해주지 못했고 자녀들은 지친 어른들의 감정 받이를 하며 기죽어 살다가 힘 있는 어른이 된 후 과거에 배운 대로 여린 자식을 억압하며 굶주렸던 자존감을 채울 뿐이었다. 그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자신의 구멍 난 자존감은 약자나 자녀의 자존감을 묵살하고 뺏어다 채운다고 매울 수 없을뿐더러 자신의 무지가 대대손손 대물리며 자존감에 구멍을 뚫는 행동인 줄은 말이다.


역사적 배경이나 내 부모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 '내가 너무 못나고 잘못해서 외면당하고 비난받은 게 아니구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가정교육이 형편없었다는 것은 집고 넘어가야 할 분명한 문제다. 역사책을 보면 정약용이나 신사임당과 같이 자녀의 마음을 키우는 것에 눈뜬 위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중문화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전통적으로 가문의 영광, 유교와 예절, 양반가의 가정교육, 가풍 등 우리 가정교육은 겉으로 보이는 면에 치우쳐져 있었던 것 같다. 부모에 대한 예절이나 집안 품위를 지키기 위한 외적 행동 규율이 있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할 긍정적 자존감과 정서적 자립을 위한 가정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의라는 말을 앞세워 과격한 언조로 순종과 종속을 강요했다.


우리의 지난 가정교육을 과하게 표현하자면 '어른들이 먹고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알아서 기도록 가르쳤다'라고 말하고 싶다. 코찔찔이가 자라 미래를 이어갈 중요한 인재가 된다는 미래 시점을 갖지 못한 채 자신의 현재 만을 인식하는 어리석은 어른의 자기중심적 강요였다고 말이다.


뇌과학, 발달심리학, 진화심리학 등을 살펴보거나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나 주변에 안정적인 사람들을 경험해 보아도 부모가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강요하는 경우는 올바른 부모의 태도로 추천되지 않는다. 정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한 이들의 부모는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존중하는 태도를 지녔거나 자식을 자기 신장쯤으로 여기지 않고 타인으로써 약간 거리감을 갖고 소통하고 기다림을 제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식을 위해 온 몸 바쳐 일한다고 하지만 부모의 돈과 지식과 함께하는 절대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자녀의 성공이나 안전한 자립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도 모르고 바쁘게 돈 버느라, 잔소리로 가르치느라, 옆에 끼고 자기 생각대로 끌고 가느라 애써봤자 아이도 어른도 상처만 남는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가정교육을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식 만들기' 정도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자기중심적인 낮은 시야에서 자기 권위와 자존감 채우기 급급한 부모'가 있다면 이제 그만 자기 어리석음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어린 자식은 부모가 애를 끓으며 강압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자기 생존을 위해 부모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어있고 전달하기 싫어도 부모가 보이는 삶의 태도를 잠재의식 속에 온전히 내려받는다. 부모가 아무리 지식이 하늘과 같고 옳은 말을 해도 말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하는 그 태도를 온전히 내려받는다. 혹여 부모가 비참하고 폭력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한다고 해도 옳고 그름 가리지 않고 부모의 모든 언행이 자녀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으로 작용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전달하려고 안달복달 잔소리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상처 하나, 순간의 감정 처리 하나 적절히 해낼 줄도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 부모라는 이유로 세상 다 아는 성인인 것처럼 자녀에게 시키는 대로 그냥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은 어른이 어리석은 방법으로 어리석은 어른을 키워내는 문화적 유산,

당신도 모르고 준 거니 사양할게요.'


지난 가정교육에 대해 과격하게 말하는 것이 속 시원하면서도 내 부모님께 송구스럽고 불편한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불편하다고 다물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인생사 고리의 하나로 당당히 포함되어 살아가고 있으며 부모의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할뿐더러 부모님 역시 내 부모 이전에 할머니의 자녀이기도 했기 때문에 가정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나를 향한 격려와 응원이기도 하고 내 부모에 전하는 이해와 위로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배곯아 가시며 일하시고 내 속옷 한 장 빨아 널어보지 않았을 만큼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헌신을 다 하신 부모세대에게 배은망덕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정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가만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부모가 된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우울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어서 내일로 도약하기 힘들고 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이 아이가 나와 같이 무기력하지 않고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키울 수 있을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지금의 감정에서 빠져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내가 이런 입장을 내세워도 되는가' 하는 두려움을 버티고 용기를 낸다.


지난 가정교육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자식 된 나의 안녕과 더불어 내 아이의 안전한 자립을 소망하는 것이다. 더불어 부모님을 이해하는 것이고 할머니의 자식 된 그들의 치유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가족 안에서 어른이 아이의 자존감을 밟고 일어서는 비인격적 유산을 내 아이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세운 것이다.


아직 어린 시절 마음에 남은 상처를 다루기 힘들거나 너무 깊이 숨겨놓아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두려워 외면하고 싶거나 일상의 감정을 조절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당신의 아이에게 도움을 받아보면 좋겠다.


아이와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마음으로라도 아이를 향해 진심 어린 용기를 내면 된다. 아이에게 지난 가정교육에 이의 있음을 표하고 이해룰 구해자.


마음의 대화일지라도 용기가 필요한 그 이야기들을 시작해 보자. 내가 부모에게 원했지만 받지 못해 상처 받았던 이야기, 내 부모가 나를 위해 헌신했던 이야기, 나는 너에게 내가 듣고 싶던 '고맙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말해주는 부모가 되겠다는 이야기, 너의 소리를 듣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겠다는 이야기, 이제 상처를 치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히 내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이야기.


최악의 유산 상속을 사양하고 본인이 어른됨을 꾸준히 배우고 있다고 자녀에게 밝히는 것은 자녀를 나와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머지않아 가벼워진 어깨로 일상의 행복과 감사를 느끼게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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