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과 성실 vs 비난과 지시

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7편

by 송다감

우리의 부모님들은 처절히 근면 성실했고 우리는 부모로부터 근면함과 헌신을 경험한 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비난과 강요가 버무려져서 배운 근면과 헌신은 안타깝게도 온전히 자녀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인간의 뇌는 같은 크기의 긍정과 부정 감정에서 부정 감정을 더 크게 각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어보다 비언어적 인식이 더욱 능동적이고 자동적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부모의 근면 성실함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불안과 초조함이 우리에게 더 깊이 있게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언어적, 비언어적 비난과 지시 때문에 그들이 보여준 숭고한 근면과 성실의 자세는 녹아내리고 그들이 키워낸 이 사회의 어른들이 불안과 피해의식에 젖어 살고 있는것 같다.


피해의식에 젖어 있으면 시선이 심리적 표적만을 추적하기 때문에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다. 좁은 사고관을 가지고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과 '선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어른으로써 배워야 할 당연하고도 중요한 가치를 배우지 못한다. 이렇게 피해의식 때문에 선택과 책임의 경험이 부족해지다 보면 자신을 신뢰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정의 내릴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도 없고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선택과 책임을 모른 채로는 밥 먹고 몸만 큰 어른 아이로 평생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른 아이는 모든 관점이 타인에게 가있기 때문에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투정만이 소통 방법인 양 불만과 불편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다. 부모 곁을 떠나 살더라도 자기 소통방식인 투정을 받아낼 또 다른 대상을 배우자, 자녀, 그 밖의 인간관계 속에서 만들어서 계속 남 탓만 하면서 불만과 피해의식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피해의식에 젖어 사는 아빠를 보면서 괴로움도 많이 받았지만 마음속으로 아빠를 탓하고 안타까워하며 성장했다. 그런데 나도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 나는 그냥 열심히 사는 건 줄 알고 지냈는데 내면을 바라 볼 수록 차근히 한 걸음씩 나아가지 못하고 남들은 어떻게 하나, 나는 지금 여기가 맞나 우왕 좌와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누군가에게 정답을 기대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버둥거릴 뿐이었다.


나의 피해의식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인 줄 알게 되었을 때도 부모의 헌신에 누를 끼칠까 염려되어 가정교육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성실하고 희생적인 부모님의 지극한 보호를 받으며 대학교육까지 걱정 없이 받고 자랐으면서 가정교육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사리 분간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처럼 느껴졌고 상상만으로도 가족의 성난 훈계가 재빠르게 내 귓가에 울려 퍼졌와 그저 못난 내 탓으로 돌리고 쭈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되어 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더는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알 수 없고 끝도 없는 불신과 불안과 피해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않고서는 나는 물론이지만 내 아이가 나로 인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갈까 속상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제도 안되지만 무례하게도 가정교육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다섯 식구 살림을 깔끔히 해내시고 세 아이 도시락을 싸고 몸이 아무리 아파도 부업을 계속하신 엄마나 언제나 새벽같이 일 나가셨던 아빠에 비해 나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터무니없다. 그래도 근면과 성실은 따라갈 수 없지만 비난과 지시의 언어는 훨씬 안 쓸 수 있다.


부모님이 근면과 성실함 속에 무심결에 버무렸던 비난과 지시의 위험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외면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존중을 글로 배우다 보니 때론 이중적이고 때론 냉소적이고 때론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존중의 언어와 비언어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가정 안에서 어깨도 가벼워지고 우리 가족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갈등 가정에서 성장한 남편에게도 위로와 이해와 언쟁을 버무리며 아이들에게 존중의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지혜를 쥐어짜며 살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괴롭지 않을 만큼의 평화적인 가족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부모의 긍정적 정체성과 영향력의 중요성을 아는 부모'


내 아이들이 피해의식 없이 자기가 타고난 존재의 가치를 온전히 누리며 안전하게 자립하도록 돕고 싶다. 부정적 잠재의식 그까짓 거 '불편해서 못 살겠다' 흘려보내고 스스로 자유롭고 안전한 어른의 모습을 선보이며 나와 같이 죄의식과 피해의식이 버무려져 길을 잃은 이들. 특히 부모가 됨으로써 거대해진 혼돈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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