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에 인정받지 못하면 생기는 일

가정교육에 이의 있습니다_ 3편

by 송다감

우울과 불안에 버무려져 자기중심을 잃고 만만한 곳에 언짢음을 전염시키는 보균자를 종종 만난다.


피로한 중에 어린아이를 보살피는 부모

높은 자기 목표를 가지고 경험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어른이나 선배

걱정이 많고 인정에 목이 마른 사람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고자 과격한 언행으로 타인의 자존감을 묵살시키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자, 나르시시스트


이들은 관계가 연결된 사람을 넘어 접촉 없이 그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언짢음을 전염시킨다. 왜 이들은 언짢음 보균자가 되는 것일까? 언짢음을 전염시킨다고 해서 안정과 행복을 얻어 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언짢음 보균자였다. 누군가 내 언짢음을 인정할 때까지 언짢음을 키우지만 누구도 언짢음 보균자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에 언짢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긴 관찰과 사색으로 나름의 백신과 치료제를 찾았다.


언짢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인정'이다.


언짢음을 느끼고 전염시키며 시도 때도 없이 언짢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인정 받음'에 과잉 결핍되어 있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적정량이 보충되지 않으면 전혀 관계없는 일에서도 언짢음이 확산된다.


특히 유년에 받는 인정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자존감, 자신감, 긍정성, 적극성, 가능성 같은 것이 기본값이 되어 인생 역경을 한 발 씩 담담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하지만 유년에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기가 누구인지 긍정적인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다. 그래서 평생을 '못났다. 안된다. 어렵다. 귀찮다'는 부정적 정체성 끌어안고서 오늘 내가 할 일을 담담히 하지 못하고 '내가 누군지' 찾고 확인하는 일로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유년에 부모로부터 '인정 받음'은 행복의 기본값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아 식습관이나 유기농 먹거리 혹은 조기 한글이나 영어 교육보다 훨씬 훠얼~~씬 더 중요하다.


유년에 받는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인정이라는 것이 타인이 해주는 것과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고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년에 보호자로부터 적절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긍정적인 자아가 정립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이 없다고 느끼게 되고 자발적 인정의 결핍 속에서 확신이 더욱 없어져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자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며 에너지를 허비하다 보면 지금 여기서 먹고사는 가장 중요한 삶을 버겁게 느끼게 된다.


스스로 인정할 수도 타인의 인정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마치 빛이 보이지 않는 길고 캄캄한 터널을 헤집고 다니며 우당탕 구르고 깨지고 잡히는 데로 잡아당기고 집어던지며 닥치는 대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고된 언짢음 바이러스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일상에서 수시로 언짢음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언짢음을 당하는 것에서 권력을 느낀다면 당신은 언짢음 바이러스일지 모른다.


언짢음 바이러스인 당신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단박에 깨우쳐 부정적 사고의 틀을 바꿔버리거나 스스로 자신에 대해 긍정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이게 스스로 되면 바이러스도 아니겠지만..)


'나는 나로서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았다. 안 죽고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 바라고 이룰 수 있는 몸과 시간이 있다. 삶은 가능성이다. 나는 어른이다.' 스스로 인정하고 살아있는 지금을 축복하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타인의 인정도 수용할 수 있고 차츰 행복의 길을 걸을 것이다.


지금 불행과 불안이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막막한 채로, 닥치는 대로 사는 어두운 터널이 아니다. 유년의 무자비한 가정교육으로 만들어진 '나는 할 수 없다'는 눈가리개만 풀어버리면 이곳은 담담하게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래를 펼치는 밝은 세상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눈 뜬 자와 눈 가린 자가 섞여서 살아가는 곳이고 누구라도 선택에 의해 눈을 뜰 수 있고 선명히 보이는 것을 꿈꾸고 담담히 실행하고 하나씩 성취하며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바란다.


만약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야. 인생사는 복잡하고 막막해. 삶은 고독이야'라는 눈가리개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용기 내어 겉어내보자. 우리는 이대로 충분하고 지금 당장 원하고 실천할 수 있다. 눈가리개를 풀겠다는 선택이면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웅크린 마음 '참 못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