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사랑하고 싶은, 나의 가족
제2장 나의 언니
형제가 있으신가요? 제겐 위로 언니 하나,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위아래 모두 세 살 터울이고 그들의 손에 머리가 뽑혀 지금도 저는 숱이 없나 보다 싶을 만큼 격하게 치고받으며 자랐어요. 지금이야 각자 가정을 만들고 서로 자식도 키우는 입장이니 애틋한 맘에 뭐라도 더 챙기려 하지만, 학창 시절엔 뭐 눈에 뵈는 게 있나요? 캐스터네츠처럼 눈만 마주치면 서로 짝짝거리기 바빴지요.
우리 언니가 감정 기복이 좀 심해요. 미친 듯이 화를 내다가도 자기 화가 풀리면 또 까르르 웃어요. 대판 싸우고 나서 나는 기분이 아직 안 풀렸는데도 자기가 웃으라면 또 웃어줘야 돼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요. 그게 정말 사람 죽겠는 일인 거 아세요? 웃으면서 자기가 먼저 말 걸었을 때 대꾸를 안 하면 저를 또 옹졸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요. 하아... 우리 언니는 정말 언니 자격이 없어요.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2003년 2월 4일이 되기 전까진 말이에요.
그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아주 예쁜 날이었는데, 그날 밤은 엄마의 눈물이 쏟아져 내린 아주 슬픈 밤이었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거든요. 할머니는 정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날 낮에만 해도 웃으며 농담을 나누었는데 말이죠. 심장 발작으로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버리셨어요. 사실 할머니가 하루만 더 늦게 돌아가셨어도 조금은 다행이었을지 몰라요. 왜냐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이 우리 언니의 생일이거든요.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첫째 딸의 생일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머니를 잃은 거예요. 저는 사실 할머니가 혹은 할머니의 운명이 좀 야속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랑 우리 언니한테 너무 못할 일을 하고 가신 것 같아서 안타깝고 속상했죠. 장례 치르는 동안에는 내색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언니한테 살짝 귀띔으로 언니가 불쌍하단 얘기를 했는데 말이죠. 그때 언니의 답변은 제가 지금까지 본 언니의 모습 중 가장 맏이다운 대답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할머니한테 감사하게 생각해. 늘 바쁘게 사는 우리 엄마가 당신 기일 기억하기 쉬우라고 딱 날짜 맞춰서 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맏이’라는 자리가 언니를 그렇게 철들게 만든 건지, 언니가 맏이다운 사람인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저는 ‘언니’를 부르는 소리에 조금 더 진심을 담기 시작했어요.
내일은 오랜만에 언니랑 커피 한 잔 해야겠어요. 글을 쓰다 보니 또 보고 싶어 지네요. 이런 게 바로 자매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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