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내 인생이, 나조차도 관심 없던 내 인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몇 개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첫째의 임신.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기에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사랑을 주었다.
두 번째는 나의 첫 회사에서의 두 번의 사고이다.
창피한 이야기라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이때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한 번은 털어내고 가야지 싶다.
입사
한 번도 열정적으로 산 적이 없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내 몫을 제대로 해낸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열의도 없었다.
집과 너무 가깝고
칼퇴근하는 것에 비에 연봉이 꽤 셌다.
차라리 연봉이 낮았으면 진작에 그 길을 포기했을 텐데 돈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결혼을 해서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여기서 사직서를 내면 다른 곳에 입사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을 냈다.
첫 번째 사고
멋있는 연구복을 입고 플라스크에 액체를 넣고 실험하는 일은 아니었다.
여러 재료를 계량해서 30~500g 정도 되는 죽 혹은 케첩보다 조금 더 된 형태의 샘플을 만드는데 3 roll mill이라고 하는 장비를 사용해야 했다.
이름 그대로 세 개의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롤이 맞붙어 돌아가는 장비로
재료를 고루 섞어주는 역할을 한다.
대략적으로 위와 비슷하게 생겼다.
롤 간 압력이 대단히 세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그날은 주간회의를 앞두고 급하게 샘플을 제조해야 했다. 샘플을 제조한 후 안정화 시간을 가져야 제대로 된 특성을 평가할 수 있기에 급하게 롤을 돌렸다.
가을이어서 날이 쌀쌀해 작업복 외투를 입었는데 소매 부분이 어설프게 헐렁거려 두어 번 대충 소맷단을 접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날따라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30대에 떠올릴만한 건 아니지만 일하다가 쓰러지고 싶다. 진짜 도망가고 싶다. 부장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등의 진짜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상태로 작업을 계속했다.
앞에서 제품을 받아내고 다시 뒷 롤에 올려 여러 번 밀링을 해야 하는데 밀링 마친 제품을 다시 뒷 롤에 올리려고 할 때 사달이 났다. 소맷단이 풀려 롤에 말려 들어간 것.
소맷단을 빼내려 했지만 절대 빠지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외치며 왼손으로 응급버튼을 눌렀다. 롤은 멈췄으나 손은 여전히 뺄 수없었고 동료들이 와서 롤을 돌려주어 겨우 빠졌다.
너무너무 무서웠고 너무너무 아팠다.
옆 부서의 사람들 산재담당자 등 모든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응급실에 실려갔고 대단히 오랜 대기 끝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다행으로 팔이 골절되는 정도의 사고로 마무리되었다.
팔의 두 뼈가 다 골절되었다고 했다. 당시 20개월 된 아이를 두고 입원해야 했다.
처음으로 전신마취를 해보았고 골절 수술을 받았다.
남들이 골절이라고 할 때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내가 겪어보니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더구나 어린아이와 일주일 이상을 떨어져 지낸다는 것도 너무 미안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산재처리를 해주었고 휴직기간도 주어졌다.
그 기간 동안 한 쪽팔은 불편했지만 집에 아이와 있는 것이 너무 좋았고 회사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러나 돈은 필요했다.
처음으로 유튜브를 접했고 그 안의 영상에 빠져 들어 본격적으로 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형편없는 기억력 덕에 그때 몇 개월을 쉬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꽤 오랜 휴직 기간이 주어져 스마트스토어를 해보았다. 제대로 된 수익구조를 짜지 못해 오래가진 못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판매자의 입장에 서게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어느 것에도 관심 가져 본 적이 없는 무기력한 인생을 살다가
영상을 통해 남들은 나보다 얼마나 앞서 나가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희망도 생겼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돈 때문에 꼭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장에 내 월급만큼의 수입을 다른 일에서 얻기는 어려운 실정이라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두 번째 사고
그런데 두 번째 사고를 또 치고 말았다 같은 기계에서.
이번엔 밀링기에 내 치렁치렁 긴 머리가 끼인 것이다.
응급버튼을 눌렀을 때는 내 눈 바로 앞까지 롤이 와있었다.
이마는 살짝 찢어져서 바늘로 몇 바늘을 꿰매고 바로 퇴원을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이마와 머리 앞쪽에 피떡이 져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놀라서 달려온 친정엄마가 머리를 짧게 잘라주었다.
그렇게 또 휴직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1년 남짓하는 기간 동안 두 번이나 동일 장비에서 사고를 낸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공포감도 떨치기가 힘들었다.
회사에 복귀해서는 내가 하는 업무에 가장 기본이 되는 밀링 업무를 배제받았고
산재담당자는 부서를 옮기는 것을 제안했다.
퇴사
밀링을 다시 하긴 무서웠으나 이미 두 번의 사고로 회사 전체에 소문이 돈 상태에서 다른 부서에 가는 건 망신거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여서 지금이 퇴사할 기회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준비는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남편과 상의 후 퇴사를 결정했다.
6개월의 퇴직급여를 보장받고 그동안 다음 일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고2에 이과를 선택하며 벗어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공대생의 길에서 드디어 하차하게 되었다.
그리고 휴직기간 동안 경험했던 판매자의 위치에 서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끼며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공부를 했다.
한 동안 손놓았던 책 읽기를 시작했고 유명한 부동산 카페에 가입해 돈을 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줌에서 만나 새벽인사를 했다. 엄마 때문에 도박과 다름없다고 여겼던 주식 공부도 하게 되었다.
스마트스토어도 다시 시작했다. 키워드 공부를 하며 정성껏 물건을 올렸다. 신경 쓴 만큼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었다. 대신 시도 때도 없는 고객의 전화에 콜포비아가 생겼다. 그리고 매출의 정체기가 오니 열정보다는 포기를 택하게 되었다.
책은 자기 개발서만을 닥치는 대로 봤는데 거기서 자기 암시, 시각화, 끌어당김 등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시크릿이라는 책을 이때 다시 재독 하게 되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내가 긍정을 떠올리면 긍정이, 부정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일들이 끌어당긴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두 번의 사고가 생각났다.
두 번의 밀링 사고시마다 나는 처절하고 간절하게 이 회사에서 나가고 싶다. 나에게든 회사사람에게든 무슨 일이 생겨 이 일을 오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뤄졌다. 두 번다. 나의 부상으로.
생각의 힘을 믿게 되었다. 30년의 관성을 아직 완전히 이기진 못했지만 생각회로를 바꾸려고 그때부터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일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을 대면하는 것은 어렵지만 몸으로 어느 정도 에너지를 쏟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일이다.
또 완전하진 않지만 생산자에 가까운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
마음의 부담감은 훨씬 더 심해졌고 직업병도 생겼지만 연봉은 더 높아졌고
아이를 내가 집에서 돌보며 일을 할 수 있다.
전보다 많은 자유가 생겼다.
내 30년 인생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기억에 남을 전환기.
처음 전환기는 부정적인 생각 끝에 수동적으로 맞았다면
30대 중후반의 두 번째 전환기는 적극적으로 쟁취해 내려한다.
항상 글은 마무리가 어렵다.
전화위복 2 끝.
202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