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습관#20

필사의 맛

by Lovely Kay

첫째 딸아이 문제집을 들고 계산대로 가다가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라는 도서를 발견했다.

표지가 강렬하기도 하고 필사를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던지라

'필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영상이고 책이고 일단 들여다 본지가 꽤 되었다.

이미 필사노트로 작은 수첩이 있는데 이 책이 너무 끌렸다.

사실 나는 거의 자기 계발 도서만 편취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 책은 에세이, 시, 소설 등 내가 거의 접해보지 못한 분야의 글이 실려 있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이미 할 일이 산더미이고 내가 계획한 12월까지 글 100편 올리기도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에 이 필사책을 구매하는 게 맞을까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어휘를 살아있는 문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원문 옆 장에는 따라쓸 수 있는 줄 글 노트가 있었는데 내지가 꽤나 두꺼워 글씨 쓸 맛이 날 것 같았다.

필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작문실력을 키우는 것과 글을 많이 써서 악필에서 조금 벗어나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악필의 특징은 '연장 탓'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펜의 종류 촉의 방향, 종이 질감에 따라 글씨체가 천차만별이 되는데 이 책의 내지는 꽤 두껍고 적당한 마찰력이 있어 보였다.

한 마디로 쓸 맛이 날 것 같았다.


QT를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첫 To Do 리스트에 넣어놓았는데 바로 필사까지 되도록이면 하려고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블로그를 작성하는 것보다 키워드 고민 없이 내 할 말을 그냥 주저리 쓰면 되기에 부담이 덜하다. 대신 그럼에도 글마다의 주제를 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인데 필사는 문장을 읽고 따라 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은 작업이다.

아직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골몰히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앞서 말했 듯 다양한 종류의 글을 짧게나마 접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토지'라는 작품의 일부가 나왔는데 앞뒤 내용을 몰라서인지 해당 구절의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이 나왔다.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 구절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필사 책의 앞의 구절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내가 전문을 다 읽었다면 오히려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문장이지만 오히려 짧은 구절이기에 시간을 갖고 더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나왔는데 언젠가 한 번 본 적 있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보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없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시에 나온 표현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처럼 기다려 본 경험이 있기에 더 생생하게 그려지고 와닿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시라는 것이 짧은 몇 줄 안에 함축의 단어로 표현을 하다 보니 나같이 감정도 무디고 문해력이랄까 상상력이랄까 무튼 많이 부족한 사람이 사유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이 강했는데 이 번 글을 꽤나 이입이 잘 되었다. 또 필사할 때에 시인의 호흡 그대로 글을 써보며 왜 이 단어에서는 다음 행으로 넘기지 않고 한 줄로 이어 썼을까? 그럼 윗부분은 왜 다음 행으로 넘겨 썼을까 하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시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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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책 제목처럼 어휘에 신경 써서 읽어보려고도 한다.

나에게 낯선 단어는 무엇인가.

낯설지는 않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어떻게 글에 녹여내는가.

필사 책의 저자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토지'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두 작품 모두

'쿵쿵'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같은 글씨의 단어지만 '토지'에서의 느낌과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의 느낌이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맥락에 놓이냐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짐을 경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씨체는 여전히 엉망이지만 그 외의 맛을 찾아가며 한 권을 완성해보고 싶다.

몇 만원으로 선별된 문장들을 접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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