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습관#21

나의 집 5

by Lovely Kay

부모님의 이혼 전까지는 꽤나 풍요롭게 생활했고

부모님 이혼 후에도 집만 작아졌지 엄마는 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서야 들었다.

둘이 벌어서도 빠듯한 느낌인데 엄마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아무튼 이러 저한 이유로 부족함을 크게 경험한 적은 없었는데

단 한 가지 집만큼은 항상 아쉬움? 이 있었다.

왜 우리 집은 항상 방 두 칸짜리 25평이어야만 하나.

어릴 적 주택에 살 때 외에는 계속 작은 평수에 머물러 있었다.

왜 어린이에게 집의 크기가 중요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큰 집,

혹은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신혼집 1,2

결혼을 할 때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고 아이도 미리 생겨(?)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친정과 같은 아파트로 전세를 얻어 신혼집을 차렸다.

전세 만기가 되어서야 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연장을 하려 했지만 집주인이 매도를 해버렸고 바뀐 주인이 집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


할머니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했기에 같은 단지로 매수를 하여 살게 되었다.

내 집을 사니 좋은 점은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자금 부족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곳에서 진행을 했다.

하필 그 시기에 회사에서 첫 번째 부상을 당해 인테리어를 눈으로 정확히 보지 못하고 진행되었다.

입주하니 역시 하자가 많았다.

그래도 26평의 방 세 개짜리 깨끗해진 집에 살게 되어 좋았고 그때부터 부동산 등 경제관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첫 집 매수기에 열심히도 집을 보러 다녔다.

여러 매물 중 1층인 이 집을 보고 단번에 마음에 들었던 것이 신기했고

살면서 만족했던 집이었다.


이 집에서 남편과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고 생전 해본 적 없는 수술도 해봤고

내 집을 처음 가져보기도 했고 인테리어도 처음이었고

입원으로 인해 아이와 여러 날을 떨어져 있어보기도 했고

첫 퇴직도 해보고 첫 투자도 해보았다.

이 집에서 진짜 진하게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우리 둘째를 임신하게 된 곳도 이 집에서였다.

이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갑자기 들어선 둘째로 인해 더 빠르게 이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여러 방면에서 유독 새로운 시작, 시도, 결정을 많이 한 내 집.


그리고

어릴 적 부모님과 풍족하게 살 때는 화장실 두 개 딸린 집에 쉽게 이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돌고 돌아 현재의 집에 오게 되었다.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