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평 아파트
구축 아파트여서 가장 큰 평수가 28평까지인데 그 와중에 산 뷰가 좋다며 방 두 개인 25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할머니와 엄마가 방을 쓰고 내게 방을 내주었다. 계속 불안정한 상태여서 인지 5학년 내지 6학년 때 혼자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 너무 창피하고 엄마에게 혼날까 봐 몰래 일어나 이불을 빨다가 결국 들켰다. 웬일인지 엄마는 혼내지 않았다. 혼나지 않아서 더 뚜렷한 기억.
그렇게 좋아하던 외할머니었는데 막상 함께 사니 너무 숨이 막혔다.
인간이라면 자기 할머니를 그리 미워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시절이다.
공부를 너무 못하는 게 화가 나서 엄마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해서 처음으로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을 못 봐서 인지 수학과 영어 상/하 반을 나누어 수업하는데 '하'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고 다음 학기부터는 계속 '상'반을 유지하고 영어시간 반장을 따로 뽑았는데 자원해서 반장자리도 꿰찼다.
삼촌을 통해 만나게 된 과외선생님과의 수업으로 성적이 마구 올랐다.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에서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전교 30등이 되어 일명 'sky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정점으로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뭐든 꾸준히 열심히 하질 못해서 아무리 과외선생님이 훌륭해도 학생이 따라가 주질 못하니 성적은 제자리였다. 아니 가장 자신 있던 수학에서 점수가 확확 떨어져 2학년 때는 'sky반'에서도 떨어지고 말았다.
성적이 떨어지니 엄마보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더 심했고 그래서 갈등이 더 커졌다.
결국 수능은 엄두도 못 내고 수시 하향지원을 해서 지방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봤더니 공부 안 하고 그 당시 실력으로 수능을 봤어도 갈 수 있는 대학이었다.
아무튼 그래도 그게 내 인생에서 잘된 일 중 하나였다. 지방대라서 기숙사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숨 막히던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 대학교에서도 술이나 마시러 다녔지 공부는 여전히 하지 않았다.
한심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졸업 무렵엔 도망치듯 대학원을 들어갔고 어찌어찌 석사를 겨우 취득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서 지하철로 20분이면 도착하는 회사를 다니며 돈 쓰는 재미로 흥청망청 살았던 것 같다.
엄마는 애초부터 공부에 관해서는 별로 관여하지 않으셨고 다만 성인이 되었으니 부동산이나 경제에 관심을 갖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나는 눈도 귀도 먼 상태였다...
중소기업임에도 꽤나 높은 연봉을 받는 것에 만족하면서, 내가 그 일에 관심이나 열정이 전혀 없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