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습관#5

나의 장애물

by Lovely Kay

남편과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는다.

어디가 아프다던가,

날씨가 춥다든가 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부분 나의 읽씹으로 대화가 급히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뜬금없이 남편이 자기 대학동창의 공황장애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의 대학동기 모임멤버로 두 식구끼리만 여행을 몇 번 간 적이 있어

꽤나 친근한 오빠다.

항상 서글서글하고 아이들 예뻐라 하고 아내말 잘 듣고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더 큰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오빠인데

공황장애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좋은 사람인데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괜찮았다가 다시 돋았다고 하는 걸 보니 꽤나 오래 앓아온 모양이다.

한 번 발동되면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앓고 있는 건 공황장애는 확실히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대학원 시절인가, 졸업하고 인가 가물가물한데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장애에 대해 직면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발표를 하는데 말을 잘하다가 갑자기 긴장이 되어 급하게 마무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꽤나 놀래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그때는 그게 뭔지 잘 모르고 가벼이 넘겼다.


대학생 때는 어떻게든 발표는 하지 않으려 했고 잘 피해나갔다.

그때는 한국인 대부분이 갖고 있는 울렁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시절 교수님과 식사를 할 때 교수님이 바로 내 앞에 있으면 너무 긴장되어 손이 벌벌 떨렸다.

멀리 있는 반찬을 집을 때는 괜찮다. 그런데 내 입으로 돌아올 때, 펼쳤던 팔을 접혀 돌아올 때 덜덜 떠는

내 손을 목격하고는 그때부터는 거의 수저만 사용하고 내 코앞의 반찬만 먹었다.

혹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멀리 있는 반찬을 집고 바로 내 입으로 가져오지 않고

입안의 음식물을 씹는 동안 기다리는 척하며 반찬을 밥 위에 올려놓는 방법을 찾았다.

내 입으로 직접 음식을 넣지 않으면 밥 위에 올리는 건 떨리지 않았다.

괴상한 일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인지를 하지 못하고 지냈다.


내가 나의 장애에 대해 완전히 인지하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

나의 첫 번째 회사를 나오며 받은 퇴직금으로 작고 오래된 서울의 오피스텔을 매수했다.

대출을 받게 되어 자서를 쓰게 되었는데 전혀 떨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담직원도 매우 친절했고 자신의 오피스텔 투자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고 매우 편안했다.

대출자서는 정말로 자필서명을 할 곳이 많다. 그래서 직원이 옆에서 내용을 설명하고 어디에 서명할지를 알려준다. 사인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장을 넘겨 또 설명하고 또 서명하고의 반복이다.

그런데 첫 서명을 하려고 내 이름 첫자를 쓰는데 덜덜덜 덜덜덜 정말 한 획도 제대로 된 직선이 전혀 없었다.

대략 이런 느낌..

대출 상담사가 놀래서 느낄 정도였으니..


그때 내가 느낀 당혹감이 너무 커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다음 서명을 하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같이 놀랜 상담사님이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했는데도 떨리는 손이 멈추질 않았다.

배고파서 그런가 하며 과자를 가져다주어 급히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떨었던 기억.


사람을 대면하는 일은 어릴 때부터 어려워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택한 이 직업은 사람을 자주 대면할 필요가 없어 나에게 최적이다.

그럼에도 운영을 위해서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 수시로 있는데 그때마다 긴장감이 최고조가 된다.


둘째를 임신하기 전 1~2달 정도 정신과를 다녀서 불안할 때만 먹는 약을 처방받아서 먹기도 했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정신과를 가려니 당장 급한 사항은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내고 있는 중이다.


남편 친구의 공황장애에서 주제가 나의 장애로 옮겨졌다.

남편의 발표 울렁증 얘기도 나왔고

나의 경우 목소리는 떨리지 않고 손만 문제라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손만 정말 문제인데 이 마저도 순간 떨었다가 마음이 다시 안정을 찾으면

그 떨림도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첫 순간. 내 떨림을 들통나는 것이 너무나 싫다는 것이 나를 더 긴장하게 하고

손떨림이 느껴지면 또 상대가 알게 될까 봐 또 긴장이 되는 악순환이다.

떨림이 오는 그 첫 순간을 상대가 알아채고 나를 바보로 보고 얕잡아 볼까 하는 두려움이 정말 큰데


내 남편이 괜찮다며 심하지 않은 것 같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니 안심이 되었다.

대부분 남의 편인 남편이 오래간만에 내 편이 되어주니 고맙고 큰 위안이 되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존재가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지 않아 다행이다.


글을 쓰기로 한 뒤

특히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기로 했기에

일상생활에서 나에 대한 안테나가 세워진 듯하다.

나의 약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 부분을 이렇게 빨리 기록으로 남기게 될 줄은 몰랐다.


몇 안 되는

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본인의 장애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20여 년을 이런 장애물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음에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작은 걸음이라도 좋으니 멈추지는 말자.


202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