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좋은 것
김남조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비통한 이별이나
빼앗긴 보배스러움
사별한 참사람도
그 존재한 사실 소멸할 수 없다.
반은 으스름, 반은 햇살 고른
이상한 조명 안에
옛 가족 옛 친구 모두 함께 모였느니
죽은 이와 산 이를
따로이 가르지도 않고
하느님의 책 속
하느님 필적으로 쓰인
가지런히 정겨운 명단 그대로
읽다가 접어둔 책과
옛 시절의 달밤,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 세상에 솟아난
모든 진심인 건
혼령이 깃들기에 그러하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