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회로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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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김작가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되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래서 20대 때는 늘씬해서 고급스러운 원피스나 높은 구두,

섹시한 옷을 입고, 속눈썹도 붙이고, 화장도 할 때도 있었고,

피아노나, 재즈댄스, 방송댄스, 발레 등을 배울 때도 있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방송일을 하면서도,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꼬박꼬박 챙기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면,

그 돈으로 아이나 가족에게 먹을 것, 입힐 것, 필요한 것

챙겨주기 바쁘다.


자신의 외모, 옷, 여유 시간, 필요한 것 등을 하는 시간에...

아이와 가족들을 위한 시간, 배려, 봉사, 필요한 것들을

사주기 바쁘다.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 참 바쁘다.

놀고, 쉬고, 즐기는 것들을 포기하기 쉽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나의 엄마가 되고나서부터

처녀 때 이쁘게 입던 옷도, 가끔 먹던 맥주도 일체 먹지 않았다.

자신의 여유 시간을 다 포기하고

엄마는 일과 나 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참 많이 외로웠을 엄마를,

나는 외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방식이 잘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모범적이었지만, 스스로를 그 틀에 갇혀 살게 하느냐고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마, 수많은 자식들이 그럴 것이다.

어떤 부모든 자신의 부모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이기 때문에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모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는 건,

대다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부족할 때도 있다.

자식이 부모를 더 사랑한다.

내가 그랬고, 우리 아이가 그랬다.


나는 방송일을 하면서,

꿈을 현실로 이루고, 꿈꾸듯 살아서,

엄마와 아버지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엄마의 하소연이

우울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결혼생활, 가정생활, 엄마라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틀에, 자신을 쑤셔넣으며,

억지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로 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엄마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행복할 때는,

내가 방송작가로 원고를 써서, 내 방송이 티비에 나올 때 뿐이었다.

엄마는 그 때 제일 행복해했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도, 엄마처럼,

자신이 소통할 상대가 자식과 티비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방송을 만들었다.


방송을 만들면서,

우리 엄마처럼 외로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내가 정신과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치유제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가 때때로 나의 고통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전쟁같은 일상을 지내면서...

나는 종교 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을 치유하고,

나를 돌아보고,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기까지

내가 갖고자 했던 것, 가진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아이의 어린 날들을 나처럼 외롭지 않게,

혼자서 이겨내지 않게,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네가 힘들 때 늘 엄마가

네 곁에서 네 편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아이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좋아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만큼 소중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내가 몸이 세 개 였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한 명은 방송일을 하고, 한 명은 아이를 돌보고,

한 명은 딸 역할을 하도록.

친구들이나 주변 동료들도 나에게 바라는 것만 있고.

내 몸은 하나인데, 주위에는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은 사람들 뿐이니까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우리나라의 육아 현실은, 좋지 않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청소년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기까지

너무 힘들고 척박한 시간을 지나야 한다.

우리는, 그저 버티고, 참고, 이겨내고,

그러한 것들만 배운다.

그러다, 부당한 것을 참고 또 참다가

여기 저기에서 감정적 분노가 터지는 것이다.


감정을 참고 살지 않고,

행복한 아이로 살며, 행복한 어른으로 살 수 있었다면,

감정적 분노가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저마다 자신들이 힘들다 하소연하고, 억울하다 말한다.

자신들만 피해입었다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소연하고 억울해하고

피해 입었다고 한들,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하소연하고 억울해하고, 피해입었다는 생각 대신,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자신이 자신의 한계를 더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부족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고 억울할 지라도,

돕고, 돕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다.


억울하고, 피해만 입는 나날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만 잘 생각해보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좋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우울증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생각 회로를 바꿔나가야 한다.

힘들 때일수록, 스스로를 다잡고,

심리학책이나, 책을 읽고,

타인들과 대화를 하며,

힘든 걸 이겨내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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