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망가진 뇌 복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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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김작가

폭력-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실제로 뇌의 발달 구조 무너지기도
가해자에게 공개적으로 책임 묻고, 스스로의 상처 보듬을 수 있어야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제니퍼 프레이저 지음·정지호 옮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소녀(문동은)가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그렸다. 동은의 치밀한 계획으로 가해자 중 둘은 숨지고, 한 사람은 평생 말을 못 하게 됐으며, 나머지 둘도 모든 것을 잃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제 동은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교사인 저자가 아들이 학교 폭력 당한 것을 계기로 괴롭힘과 폭언, 학대가 피해자의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일종의 ‘고발서’를 썼다. 어느 날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입안에 염증이 잔뜩 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저자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염증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물질(코르티솔)의 과다 분비 탓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들은 농구팀 코치로부터 수년간 지속적인 폭언에 시달리고 학대를 받고 있었다. 이때부터 공격적인 말, 학대, 괴롭힘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한 저자는 코르티솔이 염증뿐만 아니라 뇌 속의 집행 중추를 방해해 뇌의 발달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계산이나 언어 능력을 저하시키고, 단기 및 장기 기억력에도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폭력과 학대로 인해 생긴 뇌의 상처는 치유가 쉽지 않다. 피부의 상처나 멍처럼 금방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어릴 때 받은 뇌의 상처는 아동기는 물론이고 더 늦은 시기에도 정신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피해자가 학대로 인한 충격을 자기 내부로 돌리면 우울증, 불안, 자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고, 바깥으로 돌리면 공격성, 충동성, 약물 남용, 과잉 행동, 태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릴 때 나타난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가정, 학교 또는 사법 시스템에서 질책과 처벌로 다룰 경우 개인의 트라우마를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은 뇌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요즘 학교 폭력 고발처럼 가해자의 이름을 용기 있게 부르라는 것이다. 가해자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면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면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일도 못 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자신의 뇌를 치료하는 길도 막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학대, 성범죄가 벌어질 경우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지, 신고받은 어른이 오히려 의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아이들이 대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님 말씀이긴 하지만, 가해는 외부에서 비롯됐으나 치유에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한 신경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구멍이 아무리 크더라도 매일 자신에게 벽돌 몇 장을 건네주자”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점에 집중하기, 타인을 보듬고 인정하기, 때로는 명상과 가벼운 운동도 괜찮다.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어느 날에는 구멍이 모두 메워질 것이고,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행복의 뇌 신경망도 모두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찬란한 아름다움(Glory)’은 그것이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저자 역시 수많은 학폭 피해자처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 때 세 명의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결혼해 낳은 첫아들은 학교 농구팀 코치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농구를 그만뒀다. 선천적 유전 질환을 앓은 둘째 아들 역시 학급 친구들의 따돌림 탓에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 저자의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운 건 ‘신경과학’이었다. 최신 뇌과학과 심리학 이론을 ‘독학’하면서 괴롭힘은 뇌를 망가뜨리지만, 뇌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손상을 회복할 힘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뇌 역시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자는 학폭을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의학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통찰을 전한다. “신경과학계의 발견은 괴롭힘이라는 유행병에 ‘해독제’ 역할을 한다.”



책은 이유 없는 괴롭힘뿐 아니라 훈육과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폭력의 잔혹성을 ‘과학적’으로 폭로한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손바닥으로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것만으로 근육 조절과 정서 고양에 필수적 물질인 회백질을 감소시키고,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정서적 학대 역시 뇌의 집행 기능을 떨어뜨린다. 학대받은 아동에게 화난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뇌가 전쟁에 뛰어든 병사와 유사한 수준의 ‘과잉 각성’ 상태를 보이는 것은 한정된 대뇌피질 공간에서 창의력과 사고력에 필요한 에너지를 ‘(가짜) 위협’에 맞서는 데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기의 망가진 뇌는 세월이 흘러 중장년기에 암을 비롯한 위험 질환을 유발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학폭 이슈와 맞물려 시청자들의 열광적 호응을 얻은 드라마 ‘더 글로리’ 속 대사처럼 폭력의 끝에는 ‘폐허’뿐인 삶이 기다린다.



그런데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가해자의 ‘학대하는 뇌’ 역시 어린 시절의 ‘학대받은 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발달기에 경험한 트라우마가 ‘마음속 가해자’를 만들어 우울과 불안 증세, 자살 충동 등으로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바깥을 향한 공격적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뇌스캔 연구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교도소 수감자의 70%는 ‘상처받은 뇌’를 안고 있었다. 공감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현저히 줄어든 폭력 가해자들에게선 흔히 나르시시즘과 반(反)사회적 성격 장애, 성도착증, 타인을 조종하고 기만하는 마키아벨리즘 같은 특성이 발견된다.



저자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위플래쉬’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잔혹한 가학성을 번갈아 표출하며 밴드 단원을 몰아붙이는 지휘자 플레쳐에 대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분열 장애를 앓는 인물”이라며 “성장기에 당한 학대가 왜곡된 성격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가해자들에게 ‘상처받은 뇌’ 영상을 보여주면 수치심 없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무작정 처벌하고 나무라기보다 의학적 관점에서 뇌를 치료해야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상호 비극’의 악순환이 끊어진다.”



폭력의 비극이 낳은 폐허 같은 삶은 의지에 따라 변화하는 뇌의 ‘신경가소성’ 덕분에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상처받은 뇌를 치유하는 해결책은 뜻밖에 ‘손 닿는 곳’에 있다. 뇌는 ‘많이 사용한 만큼 자라는’ 근육과 같아서 일상 속 훈련으로 손상 부위를 ‘리모델링’할 수 있다.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은 대뇌 피질과 해마 용적을 높여 행복감을 낳고, 뇌세포 간 연결을 촉진하는 운동과 놀이는 과잉 각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길에 자신감 있게 응대하는 힘을 부여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자신이 겪은 피해를 ‘글’로 풀어내는 것도 평온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왼쪽 언어 중추를 활용해 공포와 슬픔에 짓눌린 과거를 ‘시각적’으로 마주하면 분노에 관여하는 변연계가 진정되면서 ‘마음-뇌-몸’이 총체적으로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와 두 아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한다.



“우리 뇌는 860억 개 이상의 뉴런으로 이뤄져 있다. 누구도 ‘은하계’만큼 광활한 뇌를 뺏어갈 수 없다. 괴롭힘과 학대로 반짝이던 별 일부가 침침해져도 다시 밝힐 수 있다.” 이 아름다운 문장이 요약하듯,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는 무지막지한 악행을 벌이는 인간의 어두운 그늘을 직시하면서도 폭력에 주저앉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의 숭고함을 발견하는 책이다.


나윤석기자(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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