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라작가 Jul 09. 2024

생각

+



나는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침묵하며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독서와 소소한 경험들을 통해 

사람을 관찰하고 세상을 배웠다. 


9살 때부터, 예수님닮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17살 때, 꽃동네봉사활동을 가서 

처음으로 취재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른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23살, 작가가 된 내가 처음으로 했던 것은,

듣는 귀를 여는 것이었다. 

잘 듣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있어야 했다. 

마음이 열려있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오해나 의심, 편견, 선입견으로 보는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시선, 사랑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응원한다는 것이다. 


선배님은 작가가 되려면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라 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고 고민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어떤 피디님은 나를 믿고 세상이 나를 도울 것을 믿어라 라고 했다.

그 한 마디는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는 믿음.

그것은 불안한 미래에 나를 든든하게 만들었고,

힘든 일들이 찾아와도, 그 말 한 마디가 나를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게 했다. 

나는 나를 믿고, 매일 노력하기 시작했고,

나를 믿어준 만큼, 다른 사람들도 믿어주며

내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인생,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고 행복할 수 있길 바라며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나 또한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거절을 못했다. 

워낙 착했었는데, 거절을 못하다보니,

나는 부탁에 자동 수용하는 습관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은 나는,

달리는 열차에서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다른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배님은 그것을 알을 깨고 날아가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했다. 


단정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이었다.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삶.

뭔가 친밀한 느낌, 왁자지끌한 느낌, 

흐트러짐의 그런 일상이 

나는 조금씩 그리워졌나 보다. 


그래서 드라마를 공부하고

심리학공부를 했나 보다. 


방송이 나를 달라지고 변하게 하고,

그 속에서 섭외, 취재를 하며 

사람을 보는 눈을 길렀다면,


드라마는, 다시 일상의 나,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아프고 다친 마음, 

그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잘난 모습 뿐만 아니라, 

망가지고, 아프고, 치유되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모습들까지도...

그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그 모습마저도 사랑하게 하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봐주고,

누군가의 하소연, 불평 불만 속에

진실이 들어있고

그 진실은 사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었어라는 진실.

그리고,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었어. 

행복하고 싶었어. 

라는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주고, 치유해주고,

사랑해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때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마음의 치유를 받았고,

그 때 나는 그것이 하느님 은총이라 생각했다. 


기존에 나쁜 언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왜 저럴까, 왜 저렇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할까 했다. 

그러나, 영성상담을 받고, 내적치유를 하며,

나는, 전에 알고 있고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날이 서 있거나 상처를 주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비판적인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


그러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치유를 해서

고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한계가 느껴지거나,

변하지 않으면, 

그 노력을 stop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영성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의 이해와 수용, 관용, 사람에 대한 애정, 사랑은

무한대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말 악마, 쓰레기, 나쁜 사람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사랑으로 치유받으면,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웬만해서는 어떤 사람들을 악마나 쓰레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끝까지 사람에 대한 초긍정적인 시선,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은 내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는 작별인사를 하면 된다. 

너무, 오래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면,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들로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 돌아오는 피드백들을 보며,

나는 어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나쁜 사람은 나쁜 게 변하지 않고

좋은 사람은 좋은 게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나쁜 언행을 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게 녹을 것이라고,

그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나를 믿고 세상을 믿은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그 개개인 한 명이 자신을 믿으면,

성공도 행복도 스스로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처입은 치유자들을 통해

나의 상처를 치유받고,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며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처럼

그 믿음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해주고 싶었던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는 마음이었다. 


그건 아무리 옆에서 도와준다 해도,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자기 불신, 타인에 대한 불신, 혐오, 부정적 감정,

부정적 피드백 등에 대처하는 자세 기타 등등


영성상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안의 상처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 상처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처받는 건 나 스스로 치유하며 나아갈 수 있다고

나를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상처받아도, 타인이 상처받지 않고,

타인이 치유받을 수 있도록 무리하게 애를 썼었다. 

때로 타인이 나쁜 언행을 해도,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고 화가 나고, 피하고 싶고

인연을 끊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타인을 이해해보려고 하면서

그걸 어떻게 하면 치유해줄 수 있는지 연구했고,

치유해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시소처럼, 상대가 좋아지는 만큼

내 상태는 안 좋아질 수도 있게 되더라. 

그걸 알고 나서는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나를 아프고 힘들고 다치게 하는 사람과의 인연은

끊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에는 고통받으며 견디고 참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나는 내 안의 힘듦을 비우는 게

얼마나 삶을 가볍게 하는지 알고 있다. 

과거에 나는 온갖 힘듦, 십자가를 다 짊어지고

혼자서 꾸역꾸역 산을 오르고 있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있는 쓰레기들은 몰아내고

그 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비우고

좋은 것들로 채운 후,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쓰레기를 받지 않고,

좋은 것들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리 안에도, 다른 사람의 내면에도

각자가 모를 유년시절부터 상처들이 있다. 

어린시절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과정을 잘 거치면, 

짜증이나 화, 타인의 단점을 지적하던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적 치유를 하고 나면

화, 짜증이 아니라,

이해, 평화로움으로 자신을 채울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면,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처는 보고

도와주려 하면서

정작 내 마음은 들여다 보지 못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말이다. 


나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타인을 욕할 이유도 없어진다. 

예를 들면, 법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건

죄다. 

그건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좋지 않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에는

나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와 관계맺기 전에 

나의 내적 치유부터 해야 한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타인을 지적했던 것들도,

타인이 나를 지적했던 것들도,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와 아픈 마음은

나에게 남아 자꾸 생채기를 낸다. 

그것은 아마, 상처받기 싫고,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은 마음,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서 그럴 것이다. 


남이 나에게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상처는 언행으로 오는데

때로, 나의 깊은 상처를 건드릴 경우,

아프고 깊은 상처는, 다른 상황, 다른 사람인데도

또 같은 상처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내면의 상처치유는 굉장히 중요하다. 

내면의 심장이 상처입은 채로 

칼에 찔리고 찢기고, 피가 철철 나는 채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 

꼭 소독을 해주고, 반창고를 붙여주고,

아물 때까지 잘 치유해줘야 한다. 


칼에 깊이 찔린 상처가 낫지 않았는데 

막 돌아다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아니면, 칼로 자신을 찔러서,

상처가 더 깊어지고 아플 수 있다.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내면의 상처치유부터 하자.

내 마음이 건강해지는 노력부터 하자.


독서, 대화, 상담, 운동, 일, 취미

무엇이든 좋다.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자. 


나는 작가다 보니, 나의 내면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타인의 내면에도 귀를 기울이며 

치유해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안 다치고 안 아파도 될 것까지

그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아파했을 때도 있다. 


모르면 말을 안 하는데,

아니까 말을 해주고 치유해주려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했을 때 대화가 통하면 좋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

그건, 사람마다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어도,

그 사람의 시간대와 경험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그때 알아듣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 알아듣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야 깨닫는 경우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건강한 마음을 갖고,

나를 믿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건강한 언행을 하는 것.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 귀가 듣고, 상대의 귀가 듣는다. 

그러면, 되도록 따뜻한 말, 좋은 생각과 말을 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나라, 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