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예술가
조선 전기의 시인이자 예술가로 불리는 황진이는
조선 최고 여류 시인으로 손꼽히며
박연 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 삼절로 불렸다고 한다.
황진이는 당대 거문고를 가장 잘 켜는 기녀였고
문장에 있어서 여느 사대부를 능가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황진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황진이의 예술가적 모습이다.
황진이에 대해 하지원은
"진이는 악바리다. 기녀들의 수업 방식을 배우는 중인데 이걸 어떻게 다
견뎠나 싶다."고 말했다.
황진이를 키운 건 팔 할이 사랑이라고 한다.
그녀는 은호와의 첫사랑에서 용감했고,
벽계수의 왜곡된 사랑을 질타할 줄 알았으며
어느 정도 구속될 자유가 두렵기도 했으나
그의 아낙이 되라한 김정한의 제안을 거절치 않았다.
곪아터진 상처들이 예술을 키우는 힘이 되더라는
다소 슬픈 진실을 긍정할 줄 아는 여자다.
예술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 속에서 예술을 완성해간
당대 최고의 자유인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