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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Feb 02. 2024

슬픔금지, 좌절금지

산골일기 오십팔 번째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참치 잡이 선원들에겐 ‘슬픔금지’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절망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절대 슬픈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슬픈 표정은 그들에게 주어진 실낱같이 작은 희망마저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슬프거나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배의 선장들이 그들을 배에 태우지 않는다. 

슬픈 표정의 어부를 태우면 재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참치 잡이가 유일한 돈벌이인 항구마을에서 배를 타지 못하는 어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난한 어부들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다. 

괴로워도 웃어야 한다. 

선원을 고르는 선장의 눈에 들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필리핀의 참치 잡이 배는 선원들에게 동일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것은 오직 참치를 잡은 어부에게만 해당된다. 

잡은 참치의 가격이 정해지면 참치를 잡은 어부에게 금액의 오분의 일이 배분되고 

나머지는 선장과 선주가 갖는다. 

한 달여를 바다에서 씨름했지만 참치를 잡지 못했다면 배분에 참여할 수 없다. 

단 한 푼의 소득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슬프거나 괴로운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슬픈 표정은 혹시 다음번에 있을 기회조차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쓸쓸하고 막막한 길을 애써 웃으며 걷는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처연하게 보인다. 

허무의 바다를 건너 세상근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한 그들의 표정은 그래서 더욱 슬퍼 보인다. 

밀린 삶의 비용이 파도 같을 텐데 슬픔마저 금지라니! 그들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소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잡어 몇 마리를 말린 꾸러미를 가족에게 건네는 그 손길의 서글픈 적막이라니!     

 

하지만 삶이 어디 민다나오 참치 잡이 어부들에게만 가혹하겠는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짐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무게다. 

하지만 오늘도 좌절금지, 슬픔금지라는 보이지 않는 머리띠를 두르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가장의 무게라는 것이 그렇고, 희망조차 사치스러운 삶의 변방이 그렇다. 

밖에서는 온갖 풍상에 찌들지만 가족 앞에서만은 무쇠다리 무쇠팔이라도 되는 양, 

두려웠던 세상을 얼버무리는 아버지들이 있고 자식들이 있다.      


은퇴를 하고 나니 간혹 삶의 길목들이 막막할 때가 있다. 

아무리 틀어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쳐다보는 심정의 절박함 같은 것 말이다. 

그 절박함이 들킬세라 애써 태연한 척 ‘슬픔금지’를 가슴에 아로새기는 날이 있다. 

아니 그 글자를 새겨 넣으려 애쓰는 날이 있다. 

허탕 친 세월의 허무를 얇은 미소하나로 떠나보내려는 민다나오 어부들의 강렬한 고통의 희망처럼 말이다.      

은퇴의 나이가 되면 예기치 않은 행운이나 빛나는 소식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청구서 아니면 부고장(訃告章) 같은 무채색 종이들만 수북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애써 마음 깊은 곳에 ‘좌절금지’ ‘절망금지‘라는 구호 하나를 새겨 넣는다. 

산다는 것은 살아내는 것이고 살아낸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살다 보면 살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저 걸음을 떼다 보면 한참을 지나오는 길처럼 말이다. 

다만 절망하지 않는 숙명으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러니 앞날의 걱정을 오늘 미리 댕겨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나 자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훗날의 걱정으로 오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하루의 행복도 불투명했는데, 먼 미래를 오늘로 데려와 마음 졸일 필요가 있겠는가. 

정말 중요한 것은 오늘 피울 수 있는 미소하나, 오늘의 어둠을 걷어낼 작은 빛 하나 

그렇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스위치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먼 훗날의 행복도 기대할 수 없다. 

우울하고 슬픈 시간이 지나간다 할지라도 우울과 슬픔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다. 

지나간 것은 아무리 애타해도 지나간 것이고 내일엔 내일의 그림이 그려질 테니.    

  

‘빠꼬라’라는 작은 쪽배 하나면 족한 민다나오의 가난한 어부들의 꿈처럼 

거대한 행운이나 대박의 욕심도 이제는 내려놓는다. 

내 품보다 큰 행운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제는 여의치 않은 일상의 모든 어려움과 좌절조차도 인생을 직조하는 날줄로 삼아야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날줄이 깊어야만 오롯한 삶이 직조되는 것이 분명하다. 

날줄이 옅으면 씨줄을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들을 덮을만한 넓고 큰 천을 짤 수 없다. 

삶의 여정에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풍상이 있는 사람만이 넓은 삶의 보자기를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안온한 길을 꿈꾸지 말자. 조금 더 편한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삶을 동경하지도 말자. 

서사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 삶에는 깊은 서사가 있고 

그 서사에는 깊은 울림이 있을 테니까. 

조금 힘든 날일지라도 ‘날줄이 깊어지려나?’ 애써 흘려야겠다.     

 

슬프고 우울한 일이 많지만 나는 애써 내게 말한다.

 ‘슬픔금지, 낙심금지, 좌절금지’라고. 어려운 일이나 아픈 일이 있으면 

인생의 천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려고 이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읽을 만한 깊은 서사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는 건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내 인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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