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서랍

by 박중일


하늘은 회색 실을 꿰매 내린다

마당에 놓인 빈 의자는

젖은 이끼처럼 말을 삼킨 채

시간의 발자국을 세고


창가에 쌓인 할 일들은

미답의 편지뭉치로

종이비행기 되어 날아가 버리고

손끝에서 떨리는 커피 잔은

증발한 온도를 세차게 떠올린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쳤다는

벽의 각인이 무너져 내리고

빗방울은 유리창을 타고

한 줄기 한숨의 지도를 그린다

초침은 모래알을 묻은 채

텅 빈 현관을 배회하는데


저녁이 오면 비는

잊힌 노래의 가락으로

창밖을 두드리고

마당의 쓸쓸함은

한 발짝씩

내 심장의 서랍으로 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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