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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Jun 30. 2020

추락

 “여기서 뭐 하시오.”

 “…”

 “이름이 뭐요.”

 “르윈.”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내 이름은 묻지 않소?”

 “…”

 “뭐, 이제 이름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난 이 밑으로 떨어질 생각이오. 얼마 전 저기 강줄기로 몸을 던졌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남았더군. 아마 이곳이라면 오늘 다시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 온 게요.”

 “잘 됐네.”

 “오, 르윈! 할 줄 아는 말이 있었군.”

 “저 밑은 물로 가득해. 떨어져서 죽지는 않을 거야.”

 “르윈, 그 벤치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이리 와서 보시오. 저 밑에는 물이 없소. 오히려 마르고 비틀어져 갈라진 땅뿐이오.”

 “…”

 “정 보이지 않는다면, 자 이 바위를 떨어뜨려 보리다. 소리는 들을 줄 아는 것 같으니 잘 들어 보시오.”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남자는 르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바위를 던졌다. 한참이 지나 쿵 하는 소리가 작지 않게 들려왔다.

 “자 이제 믿겠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떨어지면 비슷한 소리가 들려올 거요.”

 “저 밑에서는 가끔 소리가 들려와. 아주 큰 굉음이.”

 “아마 땅이 말라 갈라지는 소리일 게요. 어쩌면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군.”

 “그 소리를 누군가 듣는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저 아래를 바라볼 수 없을 거야.”

 “르윈,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거요?”

 “그 소리를 한 번만 들어도 귀를 막다 못해 뜯어내고 싶어질 테니까. 그 모습까지는 누구도 감히 볼 수 조차 없어.”

 “그 소리는 언제쯤 들을 수 있소?”

 “당신은 들을 수 없어. 당신이 여기 도착하기 바로 전에 그 소리를 들었거든.”

 “이런... 이젠 정말 아무 핑계도 없군.”

 남자는 이내 말을 마치곤 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추락하던 남자는 물의 감촉을 느꼈다. 그는 추락의 끝에서 수면에 부딪히더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남자는 놀라 눈을 뜨고 주변을 보았다. 그가 빠진 물속은 너무 어두워 주위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발 밑으로는 무한한 추락만이 있었다. 남자는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쳐 수면 위로 오르려 했다. 죽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본능이자 괴리였다. 그는 물에 빠진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몸을 움직여 헤엄치면서도,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몸부림을 칠수록 그의 몸은 더욱 느려지고 굳어갔다. 그때 수면 위 저 너머에 있는 절벽 끝에서 르윈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르윈은 벤치에서 일어나 절벽 아래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르윈의 모습을 보자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르윈에게까지 닿을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는 물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르윈은 괴롭다는 듯 귀를 틀어막고는 다시 절벽에서 멀어져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 절벽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시오.”

 익숙한 목소리였다. 분명 남자가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이름이 뭐요.”

 “르윈.”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내 이름은 묻지 않소?”

 그 목소리는 자신이 알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물속에서 점차 숨이 부족해지고 몸이 더욱 굳어 가자 남자는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엔 그의 몸에서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흙더미 속에서 소리치듯, 흙과 모래에 목이 막힌 채로 소리치듯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남은 힘을 다해 얼마 남지 않은 수면까지 헤엄쳤다. 헤엄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을 정도의 몸짓이었지만 그는 필사의 힘으로 그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다시 살아갈 원동력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몸짓에는 생명력이 가득했다. 그때, 절벽 위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남자 자신이었다. 절벽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 남자, 아니 자기 자신은 커다란 바위를 양 손에 든 채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절벽 위에서부터 거대한 바위가 추락했다. 온몸이 굳어간 채로 간신히 눈만 뜨고 있던 남자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그의 머리 위로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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