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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Oct 21. 2020

습관

 아침이 되면 자연히 눈이 떠진다. 습관은 일상 속에 스며 있다. 버스가 지나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이 어스름한 아침을 차분히 채워간다. 여자는 시계를 바라본다. 시침은 일곱을 가리킨다.


 방을 나선 여자는 가만히 서서 거실을 훑는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나름대로 단아한 모습이다. 여자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에는 시간이 맞지 않는 시계가 여전히 작동 중이다. 방 문 하나가 여자를 응시한다. 그것은 마치 여자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 혹은 그 안에서 무언가 응어리진 것이 튀어나올 듯 강하게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여자 또한 그 문을 바라본다.


 서서히 열리는 문. 방 안에는 그것이 오래 전의 일인 듯 어색하게 빛이 스며든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멈춰 있다. 비어있는 침대도, 정돈된 책상도, 방의 모든 구석 어디에도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그곳은 멈춰 있다. 여자는 차마 그곳에 들어서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조금 밀어 넣을 뿐이다. 그러다 그것마저도 포기하듯 물러선다. 이내 방은 그것이 당연한 듯 서서히 문을 닫아 모든 빛과 멀어진다.


  여자는 그리워한다. 여자는, 닫힌 문 안의, 갇힌 시간 속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부엌에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구와 기구가 맞닿고 무언가는 끓어오른다. 여자의 손끝에서 음식들은 재료가 되어 흩어지고 부서져 다시 하나 된다. 그곳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향긋한 냄새는 작은 부엌을 메운다. 식탁 위로 달그락 소리를 내며 하나하나 식기들이 놓이고 투명한 잔에는 물이 채워진다. 어떤 손이 그 끝을 뻗어 잔 속의 것을 들어마시지만, 여자는 밥을 담느라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설원의 어느 눈보다 흰 쌀은 과할 정도로 적당한 수분을 머금었다. 지금껏 여자가 지었던 여느 밥보다 완벽에 가까운 듯하지만 여자는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무심하게, 부서지듯 그릇에 담긴다. 여자는 다시 한번 그것을 다른 그릇에 눌러 담는다. 그리고는 양 손에 그것들을 들고 뒤돌아선다.


 뒤돌아선 여자는 맞물린 태엽이 튕겨 나가듯 순식간에 멈추어 버린다. 그 충격에 양 손 들린 그릇은 떨어져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은 채 여자의 음식을 먹고 있다. 그릇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그 사람은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여자의 몸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떨린다. 발아래에는 부서진 조각들이 날을 세운 채 흩어져 있지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곳에 앉은 그 사람에게, 그녀를 닮은 그 작은 사람에게 다가간다. 흐르는 눈물로, 피어난 웃음으로.


 여자는 떨리는 두 손을 그 작은 이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지만 이내 닿지 못하고 머뭇거릴 뿐이다. 재빨리 고개를 돌린 여자의 시선은 여자를 쏘아보던 그 방으로 향한다. 방의 문은 열려 있고, 빛이 스며든 방 안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여전히 울음을,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는 그 작은 이의 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여자는 빈 잔 조차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 서투른 손짓으로 떨리는 손길로 병을 들어 물을 담아 보아도 그것은 쏟아져 아래로 떨어질 뿐이다. 바닥으로 흐른 물은 작게 고이고 그 위로는 여자의 발에서 흘러나온 붉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핏방울은 고요히 물과 섞인다. 마침내 여자는 그 작은 이를 어루만진다. 여자가 흘린 눈물은 작은 이의 뺨에 흐르고 그들의 피부는 맞닿아 그 세포가 서로에게 스며든다. 뜨거운 입김과 떨리는 살결이 그들의 경계를 녹이고 허물어 둘은 그 형태가 합할 듯 가까워진다. 이제는 그 문이 활짝 열린 방 안에서는 시간이 만든 먼지와 공기가 휘몰아치고 식탁 아래 고인 웅덩이에서는 그녀의 붉은 선혈이 파도에 휩쓸려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들의 일상은 거친 바람과 사나운 파도 속에 스며들어 저 먼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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